'추억'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20.01.24 다시 가고 싶은 곳, 경주!
  2. 2019.07.13 쑥부쟁이와 자장면
  3. 2019.06.08 자전거...
  4. 2019.05.01 봄날의 추억.
  5. 2019.04.01 별은 꿈이었다

2003년 가족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오고 난 후 생각이었나 봅니다.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출발하여 마무리로 토함산 정상에 오르는 3박4일의 경주 문화 EXPO 기간 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매 답사코스마다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질문이나 느낌 한마디 한마디가 지금도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기도 합니다.

다시 가고 싶어지는 1순위 입니다.

........

 

아직도 난 경주에 갖혀 있다.
아니 경주가 나를 잡고서 놓아주지 않는다.

바람결에 스치우듯 지나야하는 문화유적을
천년이 훨씬 지난 뒤에 그들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이미 예고된 아픔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여행을 하고 답사를 했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입니다.   ㅡ
     [0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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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아파트 화단에 이름모를 꽃들이 만발했다.
뭐라고 조그많게 이름표가 붙어있는 건 다년생 초목이다. 조경으로 심지않았지만 일년생 잡초들이 그래도 뿌리를 내리고 있고 때로는 꽃들을 피워내고 어엿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중에 요즘 꽃을 활짝 피우는게 쑥부쟁이이다. 조경수군락에서 살짝 고개를 들이밀면 잡초로 여겨 뽑아내지만 큰나무 밑에서 자라면 그냥 놔둔다. 

쑥부쟁이는 어렸을 때 부터 기억하는 잡초이다.

지금으로부터 46년전 국민(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다.
어느날 우리반 공동으로 식물도감 실제본을 만든다고 도서관에서 식물도감 책을 빌려다 교실에 비치한 후 개인별로 하나씩 선정하여 실제 식물을 뿌리채 온전하게 뽑아 건조시킨 후 비닐로 씌운 책자에 붙혀 식물도감을 만든 것이다.

식물도감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갈 즈음 어느날, 수업이 끝난 후  담임선생님께서 반 간부들과 함께 직접 들로 나가서 식물 이름 하나하나를 알려주시고 색다른 식물을 함께 채취했었다. 그때 첫번째 설명이 길가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쑥부쟁이에 관한 것 이었다.

그날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중국집으로 데려가셔서 자장면을 사주셨다. 내게는 처음 맛본 신세계였다.

그 이후론 쑥부쟁이와 자장면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참고로 그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은 내 결혼식 주례 선생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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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내가 사는 아파트 한켠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아빠와 딸을 보았다. 요즘 아이들은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노래처럼 세발자전거로 시작해서 점차 나이에 맞는 어린이용 자전거로 옮겨 타기에 별도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기가 가뭄에 콩나듯 드문데 어제는 우연히 그 모습에 마주친 것이다.

내게도 그 모습과 같은 아련한 추억이 있다.

국민학교 6학년.
거의 휴일도 없이 하루도 쉬지 못하시고 일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모처럼 쉬시는 날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쉬시는 날이라 편히 쉬실듯한데도 (사실 아버지는 쉬는 날에도 집에는 계시지 않았다.) 그날만큼은 자전거를 가르쳐주신다고 나를 깨우셨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공병대가 이전하고 잠시 빈 공터로 남아있는 곳이었다. 어렸을 때 헬리콥터가 이착륙할 때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따따따 소리를 내며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문을 열고 나오는 멋진 군복을 입은 군인을 부러워했었다.
 그 공터에서는 여름날 저녁에 영화를 틀어주거나 일명 나이롱극장의 가설무대가 열려 재미난 신파극이나 흥부전이나 심청전등 고전극들이 열리곤했다. 이런 날은 할머니 손에 이끌려 공연을 보면서 주인공이 되어서 함께 울기도 했었다
 불과 이삼년 뒤 그 공터는 이태리식 집들로 산전벽해의 주택단지가 들어섰고 얼마전 들려보니 고층 아파트로 변해있었다.

 어찌되었든 그곳은 내가 처음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웠던 곳이다.  그 당시의  자전거는 대부분 짐을 실을 수 있는 성인용 자전거로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투박했었다. 더군다나 그당시 자전거는 운동용이 아닌 짐수송용 용도가 더 강했기에 적당한 짐을 싣기위해 짐받이도 제법 커서 요즘의 자전거와는 품새가 달랐었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성인용 자전거의 몸체 사이에 다리를 넣고서 자전거를 타는게 내심 부러웠기는 했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 이런 내 마음을 읽으신듯 하다. 제법 어른키가 되어 안장에 앉아도 되는 나를 보시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시고 싶으셨나 보다.

누구나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추억이 있을게다.

​그렇게 아버지께 처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자전거라는게 타는법을 한번 익히면 이후로 절대 잊혀지지않는 것의 하나이다.

영화처럼 내게 자전거를 가르쳐 준 사람이 첫사랑 연인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남자 주인공들이 여주인공을 가르쳐주지만)

보통 성인용 자전거를 탈때면 발로 페달을 몇번 굴리다가 안장에 올라타는데 난 처음부터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출발하는 방식으로 앞만 보고 페달을 밟았다.
키가 좀 못미치니 나도 모르게 페달에서 발이 떨어지기도 하고 뒤에서 잡아주는 상대(아버지)를 순간적으로 믿지 못해 페달을 멈추거나 불안감으로 뒤가 궁금해 돌아보면 어김없이 자전거와 함께 넘어졌다. 성인용 자전거로 무게감이 있어 잘못 넘어지면 큰 부상을 입기에 아버지께서 자전거 짐받이를 힘들게 꼭 붙들고 계셨을 것이다.

내 뒤에서 나를 잡아주는 아버지이기에 별다른 의심은 없었지만...
행여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두손을 놓아 버리는 건 아닐까.
약간의 의심을 감추고 앞만 보고 달렸다.

첫 자전거 타기란 상대에 대한 믿음이지 싶다. 믿음없이 나의 목숨(?)을 맞기기엔 무서웠다.
믿음이 바탕이 되고 그 믿음이 페달을 밟게 한다.  페달을 서서히 밟다가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페달을 세게 밟는다
도중에​ 의심이 들면 나도 모르게 페달밟는 힘이 줄고 그와 동시에 넘어지곤 했다.
이런 넘어짐이 수차례 반복되었다. 아마 나보다도 아버지께서 만저 지치셨을 것 같은데 셇어하시가니 짜증내신 당신의 기억이 없다.그럼에도 난 그날은 혼자서 자전거를 온전히 탈 수 없었다. 얼마 뒤에 아버지 몰래 몇번 더 연습을 하고서야 혼자 힘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믿음을 바탕으로 밟는 페달은 가볍다. 가벼운 페달 돌리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나 자신을 자전거에 맡기며 온 힘을 다하여 페달을 밟는다

그러다 한참 달린듯하여 문득 뒤 돌아 봤을 때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내가 두발 자전거를 몰고 있을 때의 쾌감이란...

​그렇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이들에게도 전해졌다.

​그 이후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많이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시내 버스와 부딪혀 자전거가 망가져 아버지께 꾸중도 듣고 사흘을 누워지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 뒤에서 자전거를 타면 늘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의 냄새가 느껴졌을 것이다. 아버지의 허리를 꼭 부여잡고 얼굴을 아버지의 등뒤에 대고 부볐던 기억도 새롭다
​​
​고등학교 시절에는 시내버스 타는 것 보다 자전거로 다니는 게 더 가까워  2년 동안 자전거로 통학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 어렸을 때 함께 한강을 자전거로 달렸던 기억도, 여의도 커플자전거도 새롭다.

나의 첫 자전거 타기는
그리운 아버지의 사랑이 그시절 자전거 바퀴 안에 추억처럼 지금도 머물고 있다.

자전거 타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영화.
말할수없는 비밀 (不能说的秘密 2007. 주걸륜.계륜미 주연)

또 다른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 에서의 남녀주인공의 자전거 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추억' 이라고 그것도 '봄날의 추억'이라고 제목을 먼저 정하고 보니 제법 그럴듯 해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별것 아니니 기대는 금물.

봄의 절정인 사월말에서 오월 초순의 산에는 찔레순이 한창 몸매를 드러내며 뽐낸다. 겨울을 잘 이겨낸 자랑이기도 할것이고 빨리 높이 자라서 하얀 찔레꽃을 피우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맘때 예전에 아버지랑 함께 산에 오를 길이 있으면 그때마다 산자락에 새로 돋은 부드러운 찔레순을 꺽어 껍질을 벗겨서 아들인 내게 주시곤 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달큰한 맛이 감도는 찔레순은 그 때부터 내게는 봄날 산행길에 아버지의 선물로 자리잡고 있다.  조금 지나면 보랏빛 꽃과 함께 기다랗게 고개를 내미는 칡넝쿨의 새순 역시 꺽어서 껍질을 벗겨 먹는 재미 역시 솔솔했다.

요즘 산행길에 탐스런(?) 찔레순을 만나면 아버지의 선물을 떠올리며 추억과 함께 하나 꺽어 입에 넣곤한다.

달큼한 맛과 함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다.
이게 다름아닌 봄날의 추억이다.

아래 "꽃이름"은 무얼까?

남쪽지방에서는 이 꽃이 피면 농사에 이로운 제비가 강남에서 온다고 해서 제비꽃이고,

북쪽지방에서는 이 꽃이 필 무렵에 식량이 떨어진 북쪽 오랑캐 무리가 식량을 뺏으로 우리나라에 쳐들어온다고 해서 민초들이 부르는 이름이 오랑캐꽃이다.

서양 사람들은 정말 단순해서 꽃색깔이 보라색으로 그냥 바이올렛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같은 꽃 하나에도 이 꽃을 접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에 따라 이리  이름이 각양각색이다.

오랫만에 만난 제비꽃이자, 오랑캐꽃이며 바이올렛이다.

실제 남쪽보다는 북쪽에서 더 자주 지천으로 만나는 꽃이기도 하다.

이왕 지천으로 만났으니 더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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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어렸을 때 밤 하늘은 마치 금 부스러기를 뿌려놓은듯 수많은 별들로 반짝거렸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의 밤 하늘은 별들이 별로 보이지않는다.

그 많던 별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별들도 우리처럼 나이들었을까?

누군가는 날한다.
공해에 찌들어 별들이 안보인다고

50여 년전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내 꿈이자 소망이었듯
지금도 그 별들은 내게 유효하다.

이제 내 꿈도 많이 사라지고 소망도 줄어들어
이제는 아름다운 꿈도 하얀 소망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라지만.

그래서 밤하늘의 별들이
하나둘 부스러지고 사라진걸까?

밤하늘이 뿌해도 밝고 큰 별은   늘 한결같이 나를 감싸고 변함없이 나를 지켜본다.

그래 맞다.

저 밝고 빛나는 별 처럼
나의 소망이 아직도 저 별을  밝고 빛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유독 밝게 비추인 별 하나

지금의 내 첫번째  큰 소망인 셈이다.
저 별빛이 스러지지 않는 한
내 소망은 늘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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