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1. 21:53 좋아하는 시

가을 마종기

십일월 초하루.
시간이 빠르다. 정말 빠르다.
갈수록 빨라지는 시간의 흐름은
나이에 비례하는듯 하다.

혼자 저녁을 먹는다.
혼자먹는 저녁은 허기는 달랠 수 있지만
요즘들어 외로움까지는 달래주지 않는다.

쓸쓸함에 쌀쌀함이 더해지는 날

그래도 새로움으로 시를 읽는다.

마종기 시인의 옛 작품 '가을'이다.
가을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가을을 나르는 시들은 감상적이다.
그러나 이 시는 좀 다르다.


- 가을 -

가벼워진다
바람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곳에
열매들이 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오, 이와도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인지 사라져간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가을의 길목에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한국에서 가을은 여름을 배웅하는 가을비 소리에 실려 오는데

이 곳도 올해는 제법 그럴싸하게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여릉을 식히는 소나기와 달리 가을을 재촉하는 비는

추적추적 온종일 그렇게 네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무더위를 식혀주는 이 가을 비가 충분해야 가을 단풍이 제대로 물든답니다.

만일 비가 적으면 여름내 그을린 나뭇잎들이 제옷을 입지 못하고 말라 비틀어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연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게 없습니다.

다 제몫이 있는 것이지요.

 

마음이 흔들릴 때에는

아니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에는 시 한편이 그래도 좋습니다.

 

시 몇편 읽어 보겠습니다.

아래 검정색 글은 제가 제 느낌 나는대로 적어 보았씁니다.

 

 

 

오 ―― 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

 

"오 ―― 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불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 ―― 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 ―― 매 단풍 들것네"

 

강진읍내 영랑 생가에 들리면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비가 놓여 있고

전라도 사람들이 기분 좋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오메"라는 감탄사로 시작하는 이시는

늘 나를 새색씨같은 정감으로 나를 설레이게 만들어줍니다. 

 

    

모과차 / 박용래

 

앞산에 가을비
뒷산에 가을비
낯이선 마을에 가을 빗소리
이렇다 할일없고
기인밤
모과차 마시며
가을빗소리

 

가을이 차 마시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합니다.

몸은 아직 뜨거운 여름을 기억하는데 마음은 선선한 가을이니

이런 날 마음을 덮히는 차야 말로 가을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마음에 드는 친구나 연인하고 함께 마주 앉아 마시는 차....

그윽한 모과향은 더욱 그윽함이 있겠지요.

 

  

낙엽소리 / 이생진
 
이거야
가을의 꽃이불
바로 이거야
나를 그 위에 눕게 하고
누워서 백운대 넘어가는
구름을 보며
이거야 바로 이거
나는 하루종일 아이가 되어
뒹글뒹글 놀다가
어미가 그리우면
아이처럼 울고
이거야 이거

 

 난 이생진 시인은 늘상 바다와 산만 좋아하는 지 알았는데

 이렇게 가을을 가을답게 노래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루 종일 아이가 되어 어미가 그리우면 아이처럼 울고 이거야 이거"라는 대목에.

그냥 요즘 말로 "Feel"이 꽂힌다고 할까요.

 

 

 

 

단풍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어렸을 때 누군가의 시에서 파란 하늘을 콕 찌르면 온통 쪽빛 물이 들거라는 시를 보고서

참 맛갈나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요즘도 파란 하늘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가을 단풍도 그렇겠지요. 그래서 가을 산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여름내 살지운 것을 아낌없이 버리는 .. 그래서 겨울을 나고 새로운 봄을 준비하듯이...

 

 

 

 

가을 엽서 /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곳에 있는지를

 

 

낙엽에게 물어보면 무슨 답이 나올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내가 제대로 질문을 해야 원하는 답을 얻을 것인데

도통 그런 재주가 제게는 없으니 바라는 답 얻기는 벌써 틀렸지만

그래도 질문도 없이 답을 아는 경우가 바로 가을비와 가을 단풍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느꼈으니까.


 

 가을 /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아래 글에 이 시를 얹어 놓았었습니다.

시라는게 주구장창 길어야 시는 아닙니다.

할말이 많다는 것은 생각이 많다는 것이고

그 생각이 많다는 것은 아직 정리가 안되었다는 의미알 수도 있으니

이렇게 간결한 시야말로 모든게 녹아있는 시같습니다.

시같지 않은 시로 귀만 간질이는 그런 시들 보다는 몇배 천배 나아서...

저도 이렇게 잠들고 싶은 날입니다.

 

저는 이 가을이 되면 김현승 시인이 많이 생각납니다.

제 글에도 그분과 마종기 시인에 대한 언급이 많지만

그분의 시는 웬지 강ㄹ에 어울리다는 생각입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얼마 전 가을에 대한 시 몇개를 정리하다가

그냥 옮겨 놓고 비공개로 놔두었다가

이제 마음이 변해 공개로 바꿔 놓습니다. 

그런데 맨아래 정호승의 시 미안하다는 왜 가을일까?

아마 산이 주는 이미지로 형상화되어서 내가 옮겨놓았나 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다:라는 대목에 홀려서 ..

 

 

실소(失笑) / 홍윤숙

 

한평생 걸려서
수수께끼 하나 풀었습니다

"먹을수록 배고프고 허기진 것
나이 먹는 것"

 


 단풍 / 박성우


맑은 계곡으로 단풍이 진다
온 몸에 수천 개의 입술을 숨기고도
사내 하나 유혹하지 못했을까
하루 종일 거울 앞에 앉아
빨간 립스틱을 지우는 길손다방 늙은 여자
볼 밑으로 투명한 물이 흐른다
부르다 만 슬픈 노래를 마저 부르려는 듯 그 여자
반쯤 지워진 입술을 부르르 비튼다
세상이 서둘러 단풍들게 한 그 여자
지우다 만 입술을 깊은 계곡으로 떨군다 

 


해바라기 / 서우승


당신 하나로 하여 아직도 낮입니다.

깜박하면 놓칠세라 졸지조차 못합니다.

눈 뜬 채

당신 쫓는 꿈

단잠보다 깊습니다

 

 


 가을의 시 / 김초혜


 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적막에 길들으니 
 안 보이던 
 내가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미안하다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삼사년전 어느 분에게 이 시인이 쓴 시집을 선물로 받아들고

단숨에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 다른 생각은 꿈도 못 꿀 정도로

나를 잡아당기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고향인 춘천에서 살면서 시를 쓴다는데

그의 시는 흔한 미사여구 하나 없이 담담함으로 마음을 전하는 진심이 읽혀집니다.

한 때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말초신경만 간질이는 미사여구로 포장한

시같지 않은 시, 그냥 좋은 글을 섞여 나열한 듯한 시에 질린 마음이어서인지

시다운 시에 굶주렸을 때라 더욱 내마음을 사로 잡았을 것입니다.

한번 읽고나면 "음 좋은 글이네" 하고서 쉽게 잊혀지는 그런 시와는 달리

시집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시집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아래 시는 제가 보기에는 좀 투박합니다.

저야 시를 쓸지는 몰라도 읽을 줄은 안다고 주제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ㅎㅎㅎ

 

한달 전 쯤인가요? 

꿈자리가 좀 사나웠던 날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광주의 모친께 일상적인 대화로 지나가는 듯이 묻습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별일없으시죠"

"응 난 건강혀, 걱정하지 말고 너나 멀리서 건강챙겨라!"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칠 일상적 대화였는데 느낌이 좀 이상했습니다.

"아니 어디 편찮으신 것 같은데 정말 괜찮아요?"

"아니 뭐 ~~~~ 괜찮아 "

이제야 무슨 일이 있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눈치를 채고서 

재차 여쭈니 그제야 넌지시 소식을 전합니다.

넘어지셔서 왼팔을 다치신거라고.. 신경쓸 정도는 아니라고

한달이 지난 지금도 편찮으실 정도인데 그리 말씀하신 것이죠.

이런 경우는 담양 장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러시면서 전하시는 말씀은

"어차피 멀리서 걱정만 할 것이니 그냥 숨긴거라"고 합니다.

일견 맞는 말입니다.

멀리 중국 천진에 있는 제가 안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마는

... ... ... .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장시하 시인의 시 "어머니" 를 전합니다.

아래 제 티스토리에는 (다음 블러그에서 옮겨온) 장시하 시인의 두편 시가 함께있습니다.

 

시 제목이

 "허수아비를 만나면"                   http://click4tea.tistory.com/303

 "돌아보면 모두가 사랑이더라"      http://click4tea.tistory.com/298

 

보시면서 위 시 두편도 함께 읽어 보시면 더 좋을 듯합니다.

 

 

<어머니라는 주제에 생뚱맞지만 함께 걷고 싶은 길입니다>

 


           어머니
                                 -장시하 -

한 여인과의 사랑과 이별에는
수백편의 시를 적고
모든 것을 바칠 듯이
눈물로 많은 날을 지세웠지만
내게 자궁의 편안함을 주셨고
생명의 서를 열어 주셨던 어머니에게는
남은 상채기마냥 모가나고
당신의 삶을 성큼성큼 연소 시키던 아들이었습니다

당신의 평탄한 항해에 성난 파도가 일게 하고
세찬 바람으로 어머니의 한편에 늘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지게 하던 아들이었습니다

당신의 주름이 깊어 갈 수록 내 삶은 평탄해 졌고
당신의 시름과 한숨이 커질수록 내 삶은 평온해 졌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기로는 멈추지 않고
오늘도 당신의 생명은 작아져 가지만
천년을 다 갚아도 못할 당신의 사랑 앞에
나는 고개를 숙일 줄을 모릅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오늘 이 곳 천진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그 빗속에는 우박이 듬성 듬성 섞여 있었는데

평소와 달리 많은 비기 내리자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이번 812 천진 폭발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라고"

되돌아 보면 한국에 있을 때에도 유난히 슬픈 일들이 많을 때에는 비가 많이 내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마 평소와 다름없이 내리는 비임에도 위로 받고 위로해 주고 싶은 서민들의 마음이 전해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곳 천진의 일년 강수량은 많아야 600 mm 수준이어서 비가 적게 오기도 하지만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내리는 것도 드문 일이기에 그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비가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시절마다, 비가 내릴 때의 각자의 마음의 색깔에 따라

마치 색안경을 끼고서 보는 것처럼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 선인들은 비소리에 빗대어 시를 많이 지었고

또 시인들이나 가수들도 비에 대한 노래를 많이 부르곤 합니다.

어찌 되었던 개인적인 생각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그 빗소리에 취하는 날은 행복한 날일 것입니다.

마음이 성을 내거나 마음에 근심이 놓인 날은 비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제게 인상 깊은 빗소리는 온가족이 청학동에 들렸을 때

단군을 모시는 삼성궁 처마 밑에서 비를 파하려 토방에서 처마로 떨어지는

낙수물 소리를 하염없이 바라다 볼 때와 

언젠가 대학 시절 무등산에 홀로 오르다가 저멀리서

내게로 후두둑 후두둑 소리와 함께 점점 다가오는 소낙비와 함께 들리던 빗소리가

아직도 기억에는 늘 새롭기만합니다. 

물론 이 외에도 몇 가지 기억이 새롭지만...

아마 그 시절이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고 여운이 남았던것 같습니다.

 

 

               <얼마전 광화문 근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 연합통신 발췌>

 

 

 

비가 오면

 

                             이상희

 

비가 오면

온몸을 흔드는 나무가 있고

아, 아, 소리치는 나무가 있고

 

이파리마다 빗방울을 퉁기는 나무가 있고

다른 나무가 퉁긴 빗방울에

비로소 젖는 나무가 있고

 

비가 오면

매처럼 맞는 나무가 있고

죄를 씻는 나무가 있고

 

그저 우산으로 가리고 마는

사람이 있고

 

 

시인 이상희 :  1960년 부산 출생. 1987년 [중앙일보]로 데뷔.

시집으로는 [잘가라 내 청춘], [벼락무늬'등이 있다.
 + 2001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 현대문학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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