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굽
허형만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고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멀리 내가 근무했던 천진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이 춘절(한국의 설 명절)을 맞아 부모님 계신 한국에서 설을 쇠고 휴가겸 며칠 머무는 날 만났다.
가족이 화곡동에 거주하기에 가까운 지난 명절 때는 연럭이 닿아 NC 백화점에서 만나 가볍게 식사를 했는데 이번에도 연락이 되어서 2개월 전쯤에 만나기로 한 약속이었다. 식사를 고민하다가 대림동 중국거리에서 만나서 훠궈를 먹자고 했다. 지난번 성당 OB 모임을 한 그곳이 떠올랐다. 아내는 중국음식을 주로 먹는데 다른 곳이 낫지 않냐고 했는데.... 이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낮시간인데도 그 가게는 붐볐다.
지난번 보다는 맛이 좀 덜했다. 아마 낮시간이라는 분위기(술도...)가 주는 영향이 아닐까 한다. 그래도 훠궈 음식이 주는 시간적 여유로 긴시간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하철 대림역에서 헤어졌다.
나는 내일 개인적 일정으로 서산으로 내려와야했기에....
지하철 7호선을 기다리는데
스크린도어에 나붙은 시가 나를 잡았다
뒷굽이라는 시였다.
솔직히 제목보다는 시인의 이름 때문이었다.
허형만...
아래 내가 좋아하는 시에서도 내가 설명했지만 이분은 내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포대 교수로 옮기셨다.
수업 시간에 때때로 자신의 시를 읊고 낭송해주셨다.
눈에 띄는 그 시를 읽는 동안
지하철이 곧 들어온다는 안내음에
바삐 핸드폰 사진기에 그 시를 담았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자리에 앉은 나는 차분히 그 시를 읽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둘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한쪽으로만 굽이 닳는다.
아마도 내가 똑바로 걷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걸음걸이 뿐만이 아니라 내 일상 까지도...
사실 잘 나는 모른다.
늘 그렇게 걷다보니 내 걸음걸이가 똑바른지,
삐딱한 지도 모르고 실제 관심도 없다.
문득 시인은 이렇게 습관적으로 이어지는 삶이 옳은지 그른지 궁금했나 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가 몇가지 있다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진다고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어떤 길이었울까?
그 길이 곧바르지는 않았다.
남들과 비교하면 순탄해보여도
그 사이 사이의 의 구불거림이나 가파름 그리고 나름 낭떠러지도 많았다.
이제 그런 것들에게서 마음 놓을 수 있는 삶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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