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꿈에서 아내는 아버지를 만났다. 평소 꿈에 보이시지 않던 분이 어머니를 좋은 곳으로 보내줘서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해주셨는데 평소와 같이 꿈속에서도 너무나 생생하더란다.
얼마 전 어머니를 여윈 아내였기에 그 꿈은 남달랐을게다.
어머니를 여윈 슬픔까지도...
편안해지고 평안해지는 걸 스스로 느꼈다고 한다.
부모 자식이란게 이렇다.
그 꿈이 좋아서 평소에 싫어하던 로또복권까지 샀다. 복권을 사면 누구나 일등을 꿈꾸고 그 일등 당첨금을 어찌 사용하겠다는 근사한 꿈까지도 내게 전하고 약속을 했다. 평소 일확천금을 노리는 복권이라고 싫어했는데 이렇게 막상 복권을 사게되면 누구나 갖는 소소한 행복이다.
어제는 아버지 기일이었다.
아버지를 여윈 후 모처럼 만에 집안에 서로 주고받는 얘기와 함께 웃음꽃이 활짝 피고 넘쳤다.
어머니도 묵은 체가 내려가신 듯 얼굴에 햇살이 들고 화색이 돋았다.
다시 이 곳으로 올라오는 길에 어머니를 살짝 안아드렸다. 그리고 오랫만에 웃음 꽃이 피었는데 이는 '아버지가 어머니께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더욱 더 좋아하셨다.
아래 글은 이메일로 전해받은 글로 위와 같은 가족의 사랑에 대한 느낌을 잘 표현한 글이라서 옮기고 기억하려고 한다. 제목은 좀 그렇지만 실제 내용은 가족간의 사랑에 대한 내용이다.
「이하 동아일보 고미석 칼럼」
■ 가까운 사람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
가까이 지낸 이의 남편이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문상 간 나에게 지인은 담담히 지난날을 들려줬다.
손쓸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은 날부터 작별할 때까지 46일간 대소변을 받는 상황에서 간병인을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단다. 그는 물론이고 결혼한 두 아들도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로 병실에 다시 출근해 거의 3교대로 밤을 새웠다. 식도암으로 필담만 가능했던 중환자에게 한밤중에도 호흡곤란 같은 돌발 상황이 닥칠까 봐 불침번은 필수였다.
그 모든 일이 종착지에 이른 상가에서 지인은 말했다. 고통의 나날이었으되 온 가족이 함께한 시간은 축복으로 남아있다고.
어느 날 병실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환자는 종이 위에 ‘엄마’라고 썼다.
“할머니가 제일 보고 싶어?” 아들이 되묻자 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너희 엄마”란 표정으로 힘겹게 손을 들어 곁의 아내를 가리켰다.
옆에 있지만 곧 헤어질 그리운 사람…. 달라도 너무 다른 남편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지긋지긋하게 다투던 아내는 그 순간 그 한마디에 모든 생채기가 치유되었다고 회상했다.
잃고 난 뒤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건강뿐일까. 가족도 그렇다.
늘 곁에 있기에 익숙한 탓인지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의 의미, 가족의 일상을 찬찬히 돌아볼 기회는 거의 없다.
최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TV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가족문화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결혼 이후 여성에게 보다 많은 책임과 희생을 요구하는 이 사회의 불합리한 관행을 조명했다는 관찰 예능이다.
즉, 며느리 눈높이에서 이른바 ‘시월드’와의 관계를 되짚는데 지난주 남북 정상회담에 밀려 결방된 것이 검색어 순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 만발이다.
카메라는 남달리 고약한 시집살이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집안의 속내를 비쳐준다. 신혼이든 만삭의 며느리든 시집 부엌을 벗어나지 못하고 앉으나 서나 안절부절 전전긍긍. 마치 지도자 앞에 선 북한 관리들 못지않은 거동인데,
여기에 철없는 남편은 “다 마음에 달린 거야” “스트레스 받지 마라”라고 거들고,
시어머니는 “나도 며느리고 너도 며느리고, 풍습대로 해야지” “지금은 살기 좋은 세상이여”라고 못 박는다.
여느 가정의 이 ‘흔한’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댓글에는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란 평이 출몰하고,
미혼 여성들은 ‘손님도 가족도 아닌’ 처지에 공분을 표시한다. 막상 이런 반응에 가장 억울한 이들은 출연한 시어머니들이 아닐지 싶다.
자신이 요구한 ‘업무’ 강도나 수준은, 예전 자기 경험에 비추면 그야말로 조족지혈.
그런데도 자신의 별스럽지 않은 언동에 왜 며느리는 눈물을 삼키고, 생판 모르는 남들이 반발하는지 어리둥절했을 터다.
TV 속 ‘이상한 나라’의 시부모 아들 며느리 시누이 등 각 구성원이 TV 밖 시청자에게 일깨워준 것이 있다.
똑같은 상황도 자신이 선 자리에 따라 해석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점.
이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고부 관계를 포함한 가족 분쟁 해결의 첫 단추가 끼워져야 하지 싶다.
한 가정이 누군가의 불만과 한숨, 혹은 누군가의 권력 행사로 유지된다면 위장된 평화에 불과하다. 부모 자식과 부부 관계에서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된 횡포가 얼마나 의도치 않은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할 이유다.
이상한 나라에서 ‘행복의 나라’로 가려면 무얼 더 할지가 아니라, 지금껏 해오던 무엇을 하지 않을지부터 고민함이 우선 아닐까.
담배 끊듯, 술 끊듯 말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것보다 가까운 사람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 했다.
그 어려운 시험에 드는 5월. 마음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것일까.
어린이날 어버이날이면 외식과 선물로 저마다의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 풍습처럼 된 지 오래다. 그렇게 가까스로 면죄부를 획득했다 쳐도 그것이 다시 사랑의 부재증명으로 돌아온다면?
온 세상이 남북 화해 분위기에 떠들썩한 이 순간에도 결국 개인의 삶에서는 가족 내 갈등과 반목을 푸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화두다.
가족끼리 허물없다고 인간관계의 기본을 무시하면 가정의 안보가 위협받는다.
최고의 방책은 ‘내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대하라’는 황금률보다 ‘상대가 바라는 대로 대하라’는 백금률의 실천이다.
힘들수록 힘이 되는 가족은 진정한 소통에서 출발한다.
‘즐거운 나의 집’과 ‘즐거운 우리 집’의 공존,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고미석 (동아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