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 교보빌딩에 걸린 글판 ( 2015년 봄. 마흔 번째 봄, 함민복>

 

   마흔 번째 봄


  꽃 피기 전 봄 산처럼
  꽃 핀 봄 산처럼
  꽃 지는 봄 산처럼
  꽃 진 봄 산처럼

  나도 누군가의 가슴
  한번 울렁여보았으면


함민복 <꽃봇대, 2011> 에서.

 

 

 
우리 앞에 봄이 훌쩍 왔다,
따스한 기운 이전에 나는 이른 새벽에 눈 뜨면서 느끼는 어둠의 끝을 보고
지레짐작으로 봄이 왔구나 하고 느끼듯 몸이 먼저 봄을 느끼고 안다.

물론 제법 따스해졌다고 긴장을 늦추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로 우리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마치 불티가 사라지기 전 반짝 타오르듯 겨울날의 짖꿎음이라 여기자.

어제 모처럼 잠을 길게 잤다.


언젠가 유명 강사가 강의 중 물었다.
"아침 일찍일어나려면?"
나는 손을 들고 생각나는대로 답을 했다.
"일찍 자면 됩니다"  정답이란다.

 

우리는 때로는 이렇게 단순한 답을 잊고서
멀리서 어려운 답을 찾아 끙끙댈 때가 너무나 많다.
단순함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데 익숙하도록 교육받고 그리 살아와서이다.

얼마전에 본 영화처럼

지금 계절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봄 날이라고 믿는 지금,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 되묻는다.

 

아직, 아니 오늘의 바람은 아직도 많이 차갑다.
물론 그 바람 속에는 따스한 기운이 숨 죽이고 있겠지만

봄날이 오면 내가 좋아하는 시를 읽는다.

물론 아래 시외에도 좋은 시들이 참 많은데

한번쯤 인터넷여행을 하신다면  검색하셔서 마주 대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성부 시인의 "봄"과 노천명 시인의 "봄비"라는 시이다.

두 시인의 성향은 완전히 다르다
한 분은 투사처럼 불의와 독재에 대항해서 사셨지만 거친 현실과 역사의 균형감각을 잃지않아
힘이 있으면서도 아주 다가오는 미래는 늘 긍정적이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현실에 순응해서 다소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기에 여성처럼 부드롭고
가는 겨울에 대한 아쉬움이 잔뜩 묻어납니다.

(물론 이 시인의  "봄의 서곡"은  상당히 밝은 분위기의 시인데)


그래서 인지 같은 봄에 대한 노래이지만 느낌은 천양지차로 다르다.
그런데 끝을 이으면 하나가 되듯 정반대 같은 시도 연속으로 읽으면
어느새 내 마음 속에는 똑같아진다.

(언젠가 예전 블러그에 노천명시인의 시를 올렸다가 

친일파 시인의 시를 올렸다고 비난의 댓글에 시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노천명 시인에 대하여 누누히 설명을 하고 시로만 보자고 했슴에도)

그 당시에는 제 블러그가 인기 블러그 였던 시절이었는데

요즘은 아시는 분들만 들리니 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랜 교보문고 회원으로써 간혹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리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문구가 적힌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부턴가 여의도 교보생명 건물입구와 강남 교보문고 입구에

이 글귀가 동시에 걸리기 시작했고

이 아름답고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사람들은 계절따라 갈아입는 글귀를 기다렸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사람입니다.

 

이십여년전 부터 광화문 교보빌딩의 글판에 사계절마다 선정위원회가 엄선하여

소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오던 글귀이기에 참 좋습니다.

 

올해 2015년 봄에는 함민복 시인의 <마흔 번째 봄>이 선정되어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함민복 시인의 "마흔 번째  봄" 을 글 머리에 적었습니다. 

함께  감상하면 더 좋겠습니다.
함민복시인은 우리나라에 거의 몇 안되는 (아마 유일한) 전업 시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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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ㅡ이성부(봄 : 1994)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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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노천명

 

강에 얼음장 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가슴속 어디서 나는 소리 같습니다

봄이 온다기에
밤새껏 울어 새일 것은 없으련만
밤을 새워 땅이 꺼지게 통곡함은
이 겨울이 가는 때문이었습니다

한밤을 줄기차게 서러워함은
겨울이 또 하나 가려 함이었습니다

화려한 꽃철을 가져온다지만
이 겨울을 보냄은
견딜 수 없는 비애였기에
한밤을 울어울어 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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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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