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은 왕좌에서 쫓겨난 뒤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1637년 5월에 제주도로 유배지를 옮겨 4년 후 1641년 7월1일에 붕어하므로써  왕위에서 쫓겨난 후 이십여년의 유배생활 끝에 67세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한창 꿈을 펼칠 왕성할 나이에  꿈꾸었던 정치의 꽃을 피워갈 즈음, 믿는 이들에게서 배반당해 왕에서 군으로 강등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어 있다가 왕비와 아들 며느리까지 졸지에 잃고서 홀홀단신 제주에서 세찬 바람과 모든 이들과 격리된 외로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화를 삭이면서
매일 아침 눈뜨면 무슨 생각을 했고
그는 무얼 하면서 하루 하루를 넘겼을까?

광해왕 그가  죽고나서 그 시기에 내리는 비를 제주 사람들은 "광해우"라고 불러왔다고 하니 비운의 왕을 제주 사람들은   동정하고 그를 안타까워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지고 뭍 사람들에 당한 서러움 때문에 한 많은 광해왕을 보면서 같은 심정의 동병상련이 아니었을까 한다.

어찌됐든 의지했던 왕비마저 유배지 강화도에서 잃고 망망대해 험한 파도 속을 긴 항해 속 배멀미로 힘들었을 것인데 그 파도속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위에서의 참담한 기분과  그 분함과 외로움을 제주도 유배지 둘러쳐진 담장 안에서 어떻게 달랬을까? (배로 이동시에 밖을 볼 수 없도록 해서 제주도로 유배지를 옮기는 걸 몰랐으며 제주도에서 처음 내린 곳이 어등개라고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그 어려운 분조 시절을 기억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보냈을까?
아니면 배반의 설움을 안고 ...
때로는 인정할 수 없는  자업자득으로 ...

만일 광해를 만날수 있다면 그에게 묻고 싶다.
그리고 그 앞에서 함께 울어주고 싶다.

"왜냐?" 고 묻지마라.
단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니!
...
...
...

시간은 흐르고 또 흐른다.

이제 내 나이가 하루에도 열두번
마음 변하는 사치도 못누릴 나이인데도
난 이렇게 사치를 누리고 있다.

[광해우]
제주도에는 7월 초에 내리는 "비(雨)"를  "광해우(光海雨)" 라 하는데 "인조(仁組)" 반정으로  정권을  찬탈당한 그는 강화도에  유배 되었다가 제주도로  유배지가 옮겨진 조선15대 왕인  "광해왕(光海君)"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칠월 초하룻 날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삶을  마감하는데 이때 내리는 "비(雨)"를  광해군의  한이 맺힌 "비(雨)"라하여   "광해우(光海雨)"라고 부르는데 실제 제주에서는 광해우는  "왕에서 쫓겨난 것 보다는 백성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자신의 한"이라고 이해되어진다고 합니다. 

역사상 가장 극과극의 평가를 받는 광해군에 대해서 핍박받던 땅 제주도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았나 봅니다.
 
<광해우에 대한 제주 민요> 

 칠월 초하루 날이여 
 칠월 초하루 날이여 
 대왕 어붕하신 날이여 
 가물당도 비 오람서라 .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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