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9.02.09 내 손을 꼭 잡으신 어머니
  2. 2018.12.15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다.
  3. 2018.04.22 비가 내리는 날...
  4. 2017.02.07 어머니 1
  5. 2013.08.23 그리움은...

설 연휴를 서울에서 보내시고
내 보기에는 쓸쓸하지만 어머니께는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광주 본가로 다시 가셨다.

아들 집에 계시는 내내
당신은 편하고 즐거웠다고 말씀하셨지만
사람 만나는 재미가 없으셨으니 잠시 외출길 외에는  많이 심심하셨을게다.

계시는 6일 동안 집 근처 모래네 시장과 마곡 서울식물원 그리고 인사동을 잠시 들렸다. 인사동은 예전에 들리셨었고 서울식물원은  제주도나 다른 곳의 식물원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새로운 느낌은 조금 덜하신 듯 하다. 추운 겨울이고 편치않은 한쪽 무릎에 어디 구경차 옮기시기가 불편해 하실까 봐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셨으니... 

새로이 이사 온 곳이고 더군다나 이 곳은 당신께는 초행길이라 근처 산책도 못하셨으니...
'모처럼 아무 것도 안하시고 정말 편하게 쉬다가신다'고 아내에게 연신 '고맙고 수고했다'는 말씀까지도 아들 입장에서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

그나마 재래시장에서 몇가지 필요한 것을 사고서 들린 아파트내 커피숖에서 모처럼 단둘이서 세시간이 넘도록 어머니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내게는 그 어떤 시간보다도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내가 시장가지 전에 살짝 귀뜸겸 제안이었는데 현명한 아내가 우리 부자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두어차례 저녁에 와인 맛도 즐기고
손자녀석이 사준 피자도...
와인은 처음이라며 나중에 본가에서도 함께하시자고 제안을 하셨다.
피자는 싫어하지 않으셨으니 ...

광주 갈 채비를 마치신 후 함께 시내버스를 탔다. 잠시 떨어져 앉게 되었다가 이내 내 옆자리가 비어 함께 앉게 되었다.

자리를 옮기시자 말자 당신 손을 내밀어 내손을 꼭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전까지 잡은 내 손을 혹시 놓칠새라 풀지 않으셨다.
그 시간 내내 어머니의 마음이 말씀을 안하셔도 손을 타고서 내게로 전해졌다.
그 속마음을 아는지라 눈물이 나서 멀리 창밖만 보았다. 잠시 돌린  얼굴이 낯선 승객과 마주쳤는데 눈길이 서로 마주치자 마자 계면쩍은 듯 마주친 눈길을 이내 바로 돌리는 걸 보니 내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본듯 했다.

   건강해라.
   치료 잘하고
   서로 건강하게 보자.

   내걱정 말고,
   모든 걱정 내려놓고
   오로지 너만 생각해라.
  
   건강해질 것이야...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에 내게 말씀하신다. 잠시 표를 재발행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한 말씀을 더하셨다.

환자인 너도 힘들겠지
병간호 하는 사람은
늘 피곤하단다.
여송이 엄마에게도
고맙다는 말 꼭 전하고
너도 더 잘 해줘라.

어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이며
 "네! 잘 알아요. 잘 할께요."

어느새 승차권 발행기 앞이다.
여러차례 전달받은 승차권을 인쇄하려 자동발권을 시도했는데 불가하다. 아내와 통화를 아니 송정역에서 동생으누바로 끊었다고 말한다. 당황스러움 속에서도 어마니께 자리에 앉아계시라고 부탁을드리고 창구로 직접 발행하러 갔다.스마트폰의 승차권을 보여주자 바로타면된다고 한다. 내가 타는게 아니라 어머니께서 타신다고 하자 이 건은 재발행에 해당되어 직접 창구에서만 가능하다고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어머님 연세가 65세 넘느냐고 해서 넘으신다고 했더니 경로할인(30%)을 해 주신다.  언라인으로 예약발권시 경로우대가 보이지 않아 일반발권이었는데 (경로우대가 금요일은 안되는 걸로 알았음) 경로우대적용되니 웬지 횡재하는 기분이었다

KTX 차량 안 앉을 좌석까지 모셔다 드리고,
차창밖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드렸다.

항암치료 외래진료를 위해 세브란스병원행 시내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마곡 서울 식물원

 와인(아내와 어머니) 난 식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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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저지난주 화요일에 광주 어머니께 다녀왔다.
그동안 동생들과 아는 친척 지인들에게는 나의 처지를 말했지만 어머니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결국 이제는 알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퇴원한지 좀 시간이 흘러 몸도 좀 나아졌고 얼굴도 약간 살이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내 얼굴을 보셔도 충격(?)이 좀 적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나의 상황을 더 이상 감추는게 힘들기도 했다.

전날 동생들에게 시간되면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면서 어머니께는 별도로 내가 말씀드리겠다고 가족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몇몇이 지금처럼 알리지 않는 게 더 좋겠다는 의견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마음 먹은대로 말씀드리기로 하면서 내려갔다.

먼저 집에 도착해서 인사를 드리자 첫마디가  여윈 내 얼굴을 만지면서 "아들 고생 많았네" 랴는 말씀이었다.

간만에 동생들 부부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밖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급작스런 일정에도 오빠의 사정을 이해하고 모두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 식사 후 장소를 이동하여 차를 마시면서 오랫만에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노라니 나도 기뻤다.

시간이 되어 각자 집으로 가고
난 어머니 곁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 도중에 내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 아들!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내가 가 봤어야 했는데 못가 봐서 미안하다" 라는 말에 왈칵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 눈물이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천정을 보다가 어머니가 아닌 다른 쪽을 보아야 했다.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지 않도록 잠시 시간을 흘려 보낸 후 지금의내 상황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의외로 어머니께서는 내 말에도 담담하셨다. 과거 아버지의 경우에서 익히신 학습 효과와 저녁 식사도 잘하는 내 모습에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놓이신듯 했다. 

당신은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게 큰 걱정하지 않는다.
아들은 아들대로 치료에 전념하고
난 나대로 네게 걱정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이니 서로를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하자"

"내 좋아하는 술도
며느리 말대로 세잔을 넘기지 않을 것이고
꾸준히 운동하마."

한 침대의 옆자리에 누워 어머니와 함께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광주 본가를 나서 대산 사택으로 이동했다.

그뒤로 어머니께 전화도 자주 드리고 있다. 사실 병원에 입원한 이후 목소리에 힘이 없거나 목소리가 잠기면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화를 드리지 못해는데 이젠 거리낌없이 이틀에 한번 이상 통화를 하고 있다.

요즘도 어머니는 내게 직접 통화 보다는 아내에게 먼저 전화를 거신다. 아마도 내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셔서 혹시나 내가 불편해 할까봐 그러시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짐을 벗어서
홀가분해진 나를 본다.

엊그제 서울에 내린 눈.

세상사는 것
단순할수록 더 편하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지난주 토요일 운동중에 거칠게  울리는 전화...
화면은 낯익은 이름이었습니다.

받자마자 내가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아내와 통화가 안된다는 다급한 목소리로
담양 어머니, "아내의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전화였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받기에 제게 전화를 건 것입니다.

통하중에 아내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고속버스편으로 광주 고속 터미널까지 이동한 후 다시 군내버스(시내버스)를 이용하여  화순까지 이동하는 길이기에 이동 편의상 서산 터미널에서 아내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운전하면서 내게 절대 서두르지 말라 거듭 당부를 했지만 마음과 달리 급한 서두름은 십여년만에 가벼운(?) 교통사고를 내었습니다.  본 도로에서 샛길로 빠지는 내리막 길로 바로 교차선 끼어들기 차선이기에 서서히 속도를 줄이면서 앞차가 정지되어 있는 걸 보고서도 잠깐사이 건너편 오는 차를 확인하는 사이에 급한 내리막 길이라 차가 밀렸나 봅니다. 순간적으로 급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앞 차를 들이받은 것 입니다. 잘 아는 길임에도....

물론 제 잘못이었지만...
십여년이 훨씬 더 지난 구형 렉스톤 뒷범퍼에는 자세히 보아야 살짝 보이는 흠집이 생겼지만 대형사고 처럼  달려드는 모습이...
어찌되었든간에 사고는 제 잘못이었지요.
제 차는 그 차 뒷범퍼 아래로 들어갔다 나온 형국으로 내 범퍼 왼쪽 상부가가 긁히고 본닛이 살짝 들린 형상이었습니다. 경황이 없어 명함을 건네주고 나중에 연락하라 하고 출발했습니다. 양심에 맡기는 것 외에는...
그래도 뒤에서 해당 차량을 찍었습니다.

출상 바로 직전에 울린 전화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저의 마음과 결코 같지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사고 직 후 어찌되었든 아내를 만나 운전에는 전혀 지장 없기에 그대로 어머니를 모신 곳으로 이동...

그렇게 쏜살같이 아쉬움 속 사흘이 지나고 납골당에 어머니를 모신 후 삼우제까지 마치고 올라왔습니다.

오고 가고 아내와 많은 얘기를 나누웠습니다.

정말 힘들었을 것인데도 묵묵히 참아내는 아내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손 한번 잡아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주가 훌쩍 지나고
다시 돌아온 사택 주위에 핀 꽃들도 담양 어머니와 함께 그렇게 지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곡우 비가 내려
하늘도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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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2017. 2. 7. 10:10 가족과 함께

어머니

아침에 카카오에서 후배녀석의 생일이 오늘이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간혹 음력과 양력을 헷갈려하기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일 두번 쇠니 좋은거지" 하고 덕담으로 넘겨 주고받는다.

오늘 생일을 맞은 그 녀석의 카스의 첫번째 축하 글은 녀석의 어머니가 짧지만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어려있는 축하 댓글을 보았다.

오늘 따라 마음이 유난했다.


어제 저녁 아내는 얘기의 말미에 담양어머니(장모님)의 근황을 새로이 전했다.

지난 설날 병원에 들려 인사를 드릴 때 아내는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어 얘기 도중 눈물을 어머니께 보이기 싫어서 밖으로 자리를 피하기도 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안스러웠다.


오랜 지병,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의 기능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좋아질 수는 없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그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환자의 가족들은 머리로는 잘 알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다.

아내는 그 슬픔을 여미어 숨겨놓고 내게 말했다.

이제 더 나아지시기를 기도하는 것 보다는 고통과 근심없이 마음 편하게 계시다가

하느님의 뜻에 따르면 좋겠다며 기도 많이 하자고 ... 말했다

나도 마음이 저미어 왔다.

카카오 글을 보면서  부끄러움 반에 아내를 생각하는 안타까움 반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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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2013. 8. 23. 00:33 가족과 함께

그리움은...

 

 

 

 

중국에 오니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자주 목소리를 들으니 좋다는 말로

멀리 있는 아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분이십니다.

 

얼마전 병원에 계시면서도 집에서 막 식사를 드셨다고 하얀 거짓말을 하시기도 하시고.

어차피 알아도 못들어올 아들에게 근심거리 하나를 주는 것 보다는 편하게 지내라는 배려 였습니다.

 

어제는 전화를 걸어 끈흔 말미에

"제 곁에서 건강하게 오래 오래 계셔달라"고 부탁을 해습니다.

 

전화르 걸면 나누는 얘기는 뻔합니다.

삼시 세끼 식사는. 어떻게 ? (아들 옿롤 사는 모습에 안타까움으로)

요즘 날시가 어떠한데 어떻게 보내시느냐 ..

그릭 ㅗ마지막에는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한 십오년  전일까?

아직 PCS 가 나오기 전이니까 십육칠년 전입니다.

어느날 공중전화에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엇는데

말미에 보고 싶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제 곁에 계서 달라는 말을 했는데

제 전화를 끊고나서 며느리에게 전화를 해서 아범에게 무슨 일있느냐고 물으셨답니다.

평상시와 다른 제 모습에 걱저이 되셨나 봅니다.

그 때는 아버지께서 폐암 수술을 마치신 후 이삼년이 지나셔서 내심 걱저잉 되었습니다.

그 이우는 제 욕심이었죠

당신을 보고 싶을 때 어쩌면 못볼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다행히 건강관리를 잘하셔서 십오년 정도르 ㄹ제곁에 있어 주셔서 행복 했습니다.

 

이제는 두분 어머니가 제곁에 계시는데

두분 모두 건강하게 저와 아내 곁에 오래 오래 계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들으신 적 있나요?

하느님이 바쁘셔서 당신 대신에 어머니를 보내셨다는 말을 ....

아마 탈무드에 나오는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 적절한 비유 같습니다.

 

                 <130323>

 

                                  <080301 서울 청계천에서 모친>

 

 

정말 한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광주 본가를 일요일에 다녀왔습니다.

모친게서는 첫주와 셋째주 일요일에 계 모임이 있습니다.

 

일명 첫주계는 점심을 드시고 잠시 더 너시다가 오시고

셋째주 계는 항상 점심부터 저?까지 드시고 오십니다.

 

토요일 내장산 단풍놀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당신께 약속을 첫주께 다녀오신 후 뵙자고 말씀드렸습니다.

 

홀로 되신 후 "이제 어떻게 살거나" 하고 걱정이 태산같으셨는데

오직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살으셨기에....

그나마 그 즐거움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광주로 출발하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아마도 점심식사만 마치시고 바로 오신 것입니다.

아들 보고싶어서 한시가 급하셨나 봅니다.

전화를 받으면서 마음이 아렸습니다.

 

본가에 가면 그냥 포근합니다.

당신은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나는 묵묵히 듣습니다.

간혹가다가 장단도 맞춰주고 추임새도 넣지만

당신은 정말 오랜만에 이야기 보다리를 풀어놓으신듯

이런 저런 얘기에 훌쩍 시간이 갑니다.

그냥 앉아서 얘기를 듣습니다.

간혹 아버지 얘기도 화제에 오르지만

애써 서로 망므을 숨겨둡니다.

 

이번에도 내려 올때는 바리바리 싸주십니다.

당신이 드실것인데도 ...

나 역시도 그 마음을 알기에 조금씩 받습니다.

때로는 당신이 정말 ?아하시는 것은 받지 않지만

당신은 못내 아쉽고 서운하신가 봅니다.

 

그날은 처음으로 "언제 올거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말을 들으면서 웬지 눈물이 났습니다.

괜스리 천장의 형광등이 오래된 것 같다고 일어서서 살피는 척했습니다.

 

그나마 홀로 지내시지만 생각보다 잘 지내셔서 마음이 놓이지만

마음은 항상 그곳에 가 있습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0911103>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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