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13. 05:57 짧은글 긴여운
법정스님 주례사.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어떤 주례사
며칠 전 한 친지가 느닷없이 자기 아들 결혼식에 나더 러 주례를 서 달라고 했다. 유감스럽지만 내게는 '주례 면허증'이 없어 해 줄 수 없다고 사양했다. 나는 내 생 애에서 단 한 번 처음이면서 마지막인 주례를 어느 날 선적인 있다. 그날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나는 일찍이 안 하던 짓을 하게 됐다. 20년 전에 지나 가던 말로 대꾸한 말빚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 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만이 책임을 질 줄 안다. 오 늘 짝을 이루는 두 사람도 자신들이 한 말에 책임을 져 야 한다.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세상을 서겠다' 고 했으니(청첩장에 박힌 그들의 말이다) 그 믿음과 사 랑으로 하나 되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무릇 인간 관계는 신의와 예절로 맺어진다.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그 신의와 예절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은 같은 공간대, 같은 시간대에서 부부로서 만난 인연 을 늘 고맙게 생각하라. 60억 인구이니 30어대 1의 만 남이다. 서로 대등한 인격체로 대해야지 집안의 가구처 럼 당연한 존재로 생각하지 말라.
각자 자기 식대로 살아오던 사람들끼리 한집 안에서 살 아가려면 끝없는 인내가 받쳐 주어야 할 것이다. 자신 의 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맞으편의 처지에서 생각하다 면 이해와 사랑의 길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화 가 났을 때라도 말을 함부로 쏟아 버리지 말라. 말은 업 이 되고 씨가 되어 그와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결코 막 말을 하지 말라. 둘 사이에 금이 간다. 누가 부부싸움을 칼로 물 베기라고 했는가. 싸우고 나면 마음에 금이 간 다. 명심하라. 참는 것이 곧 덕이라는 옛말을 잊지 말라 .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신속 정확하게 속물이 되고 만다. 공통적인 지적 관심 사가 없으면 대화가 단절된다. 대화가 끊어지면 맹목적 인 열기도 어느덧 식고 차디찬 의무만 남는다. 삶의 동 반자로서 원활한 대화의 지속을 위해, 부모님과 친지들 이 지켜보는 이 자리에서 숙제를 내주겠다.
숙제 하나 한 달에 산문집 2권과 시집 1권을 밖에서 빌리지 않고 사서 읽는다. 산문집은 신랑 신부가 따로 한 권씩 골라서 바꿔 가며 읽고 시집은 두 사람이 함께 선택하여 한두 한 차례씩 적당한 시간에 번갈아 가며 낭송한다. 가슴에 녹이 슬면 삶의 리듬을 잃는다. 시를 낭송함으로써 항상 풋풋한 가슴을 지닐 수 있다. 사는 일이 곧 시가 되어야 한다. 1년이면 36권의 산문집과 시집이 집 안에 들어온다. 이와 같이 해서 쌓인 책들은 이다음 자식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의 자취로, 정 신의 유산으로 물려주라. 그 어떤 유산보다도 값질 것 이다.
숙제 둘 될 수 있는 한 집 안에서 쓰레기를 덜 만들도록 하라. 분에 넘치는 소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악덕이다.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그 어 떤 것도 아예 집 안에 들여놓지 말라. 광고에 속지 말고 충동구매를 극복하라. 가진 것이 많을수록 빼앗기는 것 또한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적게 가지고도 멋지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날은 두 사람 다 숙제를 이행하겠 다고 대답했지만 그 뒤 소식은 알 수 없다. 숙제의 이행 여부는 이다음 삶의 종점에서 그들의 내신성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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