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나를 울리는 말들 (잊지않기 위해 옮겨둡니다)
세월호의 사연중 나를 울리는 짧은 글 마디들....
(글보면 눈물이 날 때 마다 옮겨 놓으려 합니다. 잊지 않을려고)
"제발. 살 수만 있다면 엄마, 아빠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둘 다 사랑해. 우리 ○○○씨 아들이 고합니다. "
"이번 일로 죽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엄마, 아빠 사랑해요. ○○(동생 이름)야, "
"으…. ○○야, 너만은 절대 수학여행 가지 마. 오빠처럼 되기 싫으면 알았지? "
"제발.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마지막이야. "
"나 지금 기울어진 거 보이지? 고마워"
"그동안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그 차디찬 바다 밑에서 어른들의 말을 믿고, 어른들이 구해주길 기다렸을 아이들과,
아직도 그 날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생존자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부끄럽고 무기력한 어른이라 죄송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솔, 아빠가 항상 미안해 힘이 없어! 계란말이 해줄게 빨리 나와' '아빠는 솔 사랑하는데 솔 보고 싶은데 어서 와라 사랑해 -솔 아빠가-'라고 쓴 리본이 바람에 흔들렸다.
아들아 엄마 가슴에 카네이션 달아줘야지. 왜 안와. 엄마가 미안해"
"아들, 오늘 엄마 생일인 거 알지?"
"○○아 엄마 아들이어서 정말 행복했다"
"엄마! 난 엄마 아들이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진짜로"
"예은이 생각할 시간을 줄이려고 집에는 늦게 늦게 들어갑니다.
빈자리를 보고 싶지 않아서…적응해 보려고요…예은이 없는 나를…”
"딸이 놀랐을 거란 생각에 아내에게 이런저런 약을 챙기라고 시켰어요. 무엇을 먹이고 어떻게 따뜻하게 해줄지만 걱정했지 이렇게 오랜 시간 딸을 기다리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살아야하니, 내 딸, 아들을 만나야하니 이제는 밥도 먹고 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미친거라고, 자식 새끼 바다 안에 넣어놓고 그래도 밥을 떠먹고 있다고, 이렇게 웃는 건, 이미 미쳐버린 상태니까 가능한 거라고 말입니다
세월호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불렀을 말 엄마, 엄마, 엄마
'좋은 옷 못 입혀서 아이를 못 만날까봐 걱정이다"
'16년 5개월 짧지만 아들 때문에 참 많이 행복했다 고마워, 사랑해'
딸은 울기만 했던 어머니에게 오히려 괜찮다고 위로하며 기도해달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배가 기울었어. 아빠 무서워 데리러 와줘"라고 말한 게 딸의 마지막 통화였다.
당분간 많이 울 것만 같습니다. 아들이 보고 싶어서요. 그래도 현탁이가 웃던 그 모습을 위안 삼고 있습니다
진도에서 엄마들끼리 수학여행 보내면서 용돈을 얼마 줬는지 서로 물어봤습니다. 대부분이 '10만 원씩 줬다'는데 저는 2만 원밖에 못 줘 미안해 또 울었습니다. 그런데 현탁이를 찾았을 때 지갑에 2만 원이 그냥 있었습니다. "제주도는 물도 맛있으니까 맛있는 것 많이 사먹어"라고 했는데 용돈도 쓰지 못한 채 갔습니다.
아들이 언젠가 노스페이스 잠바를 사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가격이 50만 원이나 됐습니다. "그 돈이면 한 달 생활비라 안 된다"고 잘라 말했죠. 아들은 떼 한 번 안 쓰고 포기했어요. 그런데 사고 후 진도를 내려가니까 그 잠바 입고 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아 또 눈물이 났습니다
팽목항으로 내려갔을 때 캄캄한 바다를 향해 '행복은 이걸로 끝이다. 이놈아!'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 지금 여행하고 있는 곳은 어디야? 춥지는 않지?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아무리 재미 있어도 집에 연락은 줘야지…'(5월1일 저녁에)
'아빠가 어딜 가고 싶어도 걸으면서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것은 무엇일까. 지켜주지 못한 아빠 얼굴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그런 거 같아.'(5월1일 오전 11시)
'앞으론 외박금지야. 금방 갔다온다면 한번 생각해 볼께. 근데 한가지 약속이 있어. 잠깐이라도 아빠 꿈속에 웃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주면 생각해볼께. 덧니 보여주면서 환하게 웃어줘. 사랑해 아들!'이라고 적었다.
'항상 어디 가면 엄마 통해서 아빠한테 결재를 받았잖아. 이번엔 왜 4일 안에 온다고 약속해 놓고 아빠 허락도 없이 친구들이랑 멀리 갔어? 앞으로 두 번 다시 아빠는 외박 허락하지 않을꺼야'
'아들아. 내일은 엄마와 밭에 갈 꺼다. 오늘은 형이 진도에 자꾸 가는 엄마에게 짜증을 냈어. 형은 엄마까지 어떻게 될까 봐 걱정스러운가 봐. 네가 이해해줘. 그래서 이제 형한테는 밭에 간다고 하고 너한테 가려고. 사랑해'
'동네가 조용하다. 몇일(며칠)만에 우리 OO가 없다는 걸 다 알았나 봐.
아빠가 어딜가고 싶어도 걸으면서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것은 무엇일까. ○○아 가슴이 많이 답답해.'
'여러모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 그런지 엄마랑 다퉜어. 네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인데 아빠가 잘못했다. 네가 있었으면 큰소리 나더라도 아빠편 들어줬는데 앞으론 내편이 없어서 어떡하냐? 눈앞이 깜깜해…
"경찰들은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이렇게 여기 서 있을 수 있잖아요. 우리는 잘못한 게 많으니까, 애들을 먼저 보냈으니까, 이렇게 빌어야 하잖아요.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우리가 이래야 하잖아요."
"내 아이가 죽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아요? 사 고 나고 처음 며칠 동안엔 그래도 희망이 있었어요. 근데 하루 이틀 사흘 지나면서 그 희망이 다 사라졌어요. 아직도 아이 못 찾은 부모들은 아이가 죽어서라도 돌아온 부모들을 부러워해요. 알겠어요? 아이가 죽어서 돌아온 부모들을 부러워 한다구요! 너무 미안해서 아이 찾았냐고 물어보지도 못해요! 우린 죽은 아이 붙잡고 울면서도 미안해 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런 기분을 알아요? 우리가 대체 왜 미안해 해야 하는데요
영상이 흘러나오자마자 아이들이 재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가라앉는 중에도 즐겁게 웃으며 떠들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자 유가족들의 등이 일제히 푹 꺾였다. 모두가 울었다. 유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도, 기자들도, 나도 울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 사랑해.... 내 동생 어떡하지>
엄마 없이 아빠랑 혼자 지내는 홀로 지내는 그 6년 동안 밤에, 아버지가 밤에 일 나가시고 나면, 그 밤을 동생과 함께 지내던 게 동혁이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동생에 대해서도 각별할 수밖에 없는 거고 마지막 그 동영상에서 챙겼던 게 동생, '내 동생 어떡하지'....라고 남은 동생을 걱정했습니다.
"좋아하던 음악을 못 하게 해서 미안하다. (피해자들이 안산이 아니라)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다. 아들아, 이제는 모든 것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다. 너와 내가 이별을 해야 하고 놓지 못했던 희망의 끈과도 이별해야 할 시간이다. 용서하거라"
아버지는 "OO야 왜 아직 안 나와!, 다른 애들은 다 나왔는데 왜 너만 안 나와!"라고 소리치며 통곡했다.
먼저 가서 미안해요…" 가늘게 새어나오는 엄마의 첫 마디었습니다.
"저희도 곧 올라갈텐데요…축하드려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엄마의 손을 옆 반 엄마가 꼭 잡아줬습니다.
엄마는 일어나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으며 마음도 단단히 먹는 듯 했습니다. 아들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선뜻 체육관 문을 나서지 못했습니다. 벌써 체육관이 익숙해진걸까요. 엄마는 언니와 딸의 손을 뿌리치며 자꾸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했습니다. 언니는 혼란스러워하는 동생을 짜증과 눈물이 섞인 말투로 타이르며 잡아끌었고, 엄마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마냥 자꾸 뒷걸음질쳤습니다.
"미안해서 어떻게 봐, 난 못 봐. 아니 안 봐. 미안해서 못 봐"
이윽고 시신이 운구된 헬기장에 도착하자 엄마는 또다시 주저앉았습니다. (25일 째 날 진도 체육관)
마지막으로 “우리 살아서 보자”라는 말을 남기며 영상은 끝난다.
영상을 제공한 한 씨는 “어머니가 아들 주려고 구명조끼를 계속 들고만 있고 안 입고 있었다. 남들은 다 입고 있는데…”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살아 있어요! 살아있어요!" 이후 승무원이 선내 방송을 통해 아들의 생사를 확인했고, 어린 아들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어머니는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영상 속에서 구명조끼를 입지않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아이는 살아남고 이 분은 .끝내.)
우리가 안산에서 여기 오는 데 한 시간밖에 안 걸렸어! 근데 벌써 이렇게 쫙 깔렸잖아! 너희들 진도에서도 이렇게 했으면 애들 다 살릴 수 있었어 (KBS 항의차 KBS 방문시 경찰에게 하는 말)
청와대로 가는 길목이 다시금 소란스러워져 그쪽으로 가 보았다. 그리고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들이 경찰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영정 사진을 경찰들이 볼 수 있도록 두 손으로 곧추세워 들고 있는 어머니들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우리가 잘못했어요. 제발 길 좀 열어 주세요.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 제발 길 열어 주세요. 대통령님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다른 어머니 한 분이 화를 냈다. "왜 우리가 잘못했다고 해요?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어요?" 그러자 경찰들에게 잘못을 빌던 어머니가 말했다.
"경찰들은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이렇게 여기 서 있을 수 있잖아요. 우리는 잘못한 게 많으니까, 애들을 먼저 보냈으니까, 이렇게 빌어야 하잖아요.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우리가 이래야 하잖아요."
(청와대 앞에서 가로막는 경찰에게 무릎꿇고서 하는 말)
'너희가 어떤 모습으로 올라와도 엄마 아빠 눈에는 너무도 예쁜 꽃이란다. 부끄러워 하지 말고 어서 올라오렴. 모두 손잡고 어서 올라오렴
"다녀왔습니다 하고 돌아올 것만 같은 내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몸이 불편한 아빠에게 손발이 되어준 착한 아가이자 엄마에게 애인같은 아들 보고싶어 숨을 쉴 수 없다
"빨리 찾아서 올라가야할텐데…" 울먹이며 입을 열다 "에효, 아니다 올라가면 뭐해, 집에도 못 들어갈걸….
"내 새끼 보고싶어서 어떻게 살아, 올라가더라도 어차피 집에도 못 들어가고 밖에서 살아야 할 거야…""그래도 자네는 첫째 아들이 있잖아. 나는 그 녀석 하나밖에 없어. 아들 하나야 딱 하나
"아들이랑 옥상에서 삼겹살도 구워먹고 했는데 이제는 누구랑 구워먹냐…
이제는 삼겹살 안 먹을래, 이제 아빠랑 같이 밥 먹고 생일 케이크 사다주면서 아양 떨어줄 놈도 없어."
전화 한 번 해볼까. 혹시 여보세요~ 하면 기적이다 기적…"
아들에게 전화를 건 이 씨. 옆에서 김 씨가 정신차리라며 타박을 주는 데도 이 씨는 휴대전화기를 귀에 꼭 붙이고 아들의 컬러링을 듣고 있었다. "신호가 간다니까. 휴대전화는 아직 배 안에 있다는 소리야…"
지푸라기같은, 썩은 동아줄 같은 기적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넘어갑니다"는 연결음이 나오는대도 전화를 쉽사리 끊지 못했다.
"내가 평소에도 '엄마 품으로 오겠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어떻게 거기(물속)에 있겠어. 엄마 품으로 오니까 기다려'라고 다독거렸어요. 그런데 오늘 와서 '엄마 (나영이) 찾았어요'라고 하며 와요. 찾았다고 한참 울다가 갔네. (울음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가쁘게 쉬며) 그래서 내가 '그래도 엄마 품으로 왔네. 욕 할지 몰라도 나는 정말로 축하해. 자식 못찾은 사람 얼마나 많아? 오는 것만도 축하할 일이지'라고 말했어요. 나영 엄마도 '그러죠. 만약에 못 찾았으면 어떡했겠어요. 너무 감사할 일이에요'라면서
'앞으로 저 어떻게 살까요?'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런 소리 하지마. 애기 찾았으니까…고맙게 생각하고'라고 했지."
이 편지에는 '사랑하는 내 아들. 효도했던 내 아들이 어찌 그리 못오고 있는 게야. 어서빨리 돌아와다오. 어서 긴 여행에서 돌아와서 신발도, 옷도 입어봐야지. 아들아. 엄마 소원이야. 아들 얼굴 한번 만저나 보세. 어서 돌아와 줘. 오늘은 약속하는 거지. 돌아온다고. 기다리마 아들. 사랑해' 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편지에서 어머니는 “너무 멀고 험한 물길을 혼자 그리 오느라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그래도 돌아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엄마가”라고 적었다. 같은 편지에서 아버지는 “하늘에서 아직 오지 못한 친구들과 모든 이들에게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해 주렴”이라며 “정말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한다”면서 딸에 대한 애틋한 부정(父情)을 담았다.
유명 브랜드 트레이닝복과 새 운동화 위에 놓인 편지에는 “아들, 얼굴 한 번 만져나 보세. 엄마 소원이야. 어서 긴 여행에서 돌아와 신발도 옷도 입어봐야지”라며 돌아오지 않는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이어 어머니는 “오늘은 약속하는 거지? 돌아온다고. 기다리마 아들”이라며 아들의 귀환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을 담았다.
정씨는 "희생된 단원고 여학생의 오빠가 '동생 마지막 가는 길 더 예쁘게 보내주고 싶다' 며 직접 립스틱을 발라줄 땐 울음을 참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열일곱 살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모습은 봐도 봐도 적응이 되지 않더라"고 했다. 그는 "시신을 염할 때 상처나 멍 자국이 있으면 화장을 하고 그래도 가려지지 않을 땐 탈지면을 올리는데 부모는 꼭 그걸 들춰본다"고 했다. "내 자식 아픈 모습도 보고자 하는 게 부모 마음 아니겠습니까."
실종자의 이름을 부르면 돌아온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최근에는 잠수수색이 진행되는 바지선에 올라 아직 돌아오지 않는 실종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가족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 15일에 발견된 3구의 시신 중에는 당일 현장에서 바지선에서 실종된 가족이이름을 소리높여 부른 실종자 2명이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연이고, 근거 없는 믿음일 지라도 가족들은 매일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희망을 담아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