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

길 신경림

한글사랑(다향) 2013. 9. 14. 11:53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을 만든 줄 알지만
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쫒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숟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쓰러진 자의 꿈...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