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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글 하나
한글사랑(다향)
2016. 2. 5. 23:09
아래 글은 제가 매일 아침 어떤 분을 통해서 전해받는 글중에서 오늘 받은 글입니다.
대부분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글이어서 좀 늦거나 쉬는 날은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그 글에 답신을 보내면서 제가 보내는 글과 그 글을 함께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중국에서 근무하면서 돌고 돌아 전해지는 한마디에 마음 상해하던 날들이 좀 있었습니다.
제 본의와 달리 곡해하여 자신의 생각으로 각색하여 제앞에서 했던 말과는 다른 얘기였기에 그랬었겠지요.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되고 내 앞에서 웃으면서 말하는 것 조차도 가식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남에게 뒷담화 했던 이야기라 이미 잊었을 것이고 더군다나 내가 모른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을 것이니
지금 되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고 충분히 웃어 넘길만한 일이었는데도 그 땐 그랬습니다.
이제 한국에 와서야 "그 때 그런 마음 버려둘걸!" 하는 후회만 덩그라이 남습니다..
한국 들어오기 전에 가장 가까운 이를 통해서 아래 전해지는 글과 유사한 일들이
제게도 일어났었기에 아래 글은 제게 더 가까히 다가와 제목처럼 "좋은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윤세영 수필가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동아일보에 "윤세영의 따스한 글"이라는 란을 통해서 정기적으로 따스함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검색창의 글제목만 살짝 훝어보아도 벌써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저는 내일이면 4년 만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께 세배드리러 고향으로 출발합니다.
물론 근무 때문에 마음만 보내야 하시는 분들도 계시니, 그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중국에서 근무하느라 멀리서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새해인사만 드렸었었기에...
아마 무릎끓고 정식으로 세배를 드릴 때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눈물 참는 법 좀 연습해서 가려고 합니다.
안되면 '눈물 감추는 법'이라도 배워야 하나요 ...ㅎㅎㅎ
더군다나 이번 귀향 길에는 장모님도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시기에....
문안을 통해서 그동안 죄송했던 마음과 함께 밀린 숙제를 푸는 기분도 덤으로 더하려고 합니다..
몇년만에 만나는 한국에서의 설인데 제가 느끼기에는 좀 조용합니다.
나이 들어가고 제가 사는 이 곳이 약간은 시골 분위기가 강해서 일수도 있지만
제 마음이 그리 느끼라고 강요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저만 이런 느낌이었으면 한답니다.
각설하고
즐거운 명절 설 !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나마 설 인사도 대신합니다.
<편의상 전해주시는 메일 서두를 지움으로써 그 분의 성함은 알리지 않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 남들이 하는 말
새댁은 아랫집 할머니를 피해 다녔다. 툭하면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걸어오니 피하는 게 상수였다.
이웃 간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해해 주고 넘어가 주는 법이 없고
동네에서 다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난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 아줌마가 놀랍다는 얼굴로 “새댁, 새댁이 어떻게 했기에 그 할머니가 새댁 칭찬을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 할머니가 누굴 칭찬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놀랍기는 새댁도 마찬가지였다.
마주치면 예의바르게 인사는 하지만 속으로는 미워했는데 할머니가 칭찬의 말을 했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것은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난 후 변해 가는 자기 자신이었다.
먼발치에서 할머니를 보게 되면 피하지 않고 다가가 더 상냥하게 인사를 하게 되더라는 것.
그러다 보니 나중엔 서로 진짜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딸을 결혼시키면서 지인은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엄마에게 전하지는 말라”는 지침을 주었다.
“너는 다음 날이면 남편과 풀고 다 잊어버릴 수 있겠지만 나는 사위에게 서운하고 괘씸한 감정이 오래 남을 수 있다”고 했다는 것.
누구나 살다 보면 부부 싸움을 할 수 있고 싸움을 하다 보면 도를 넘는 말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막상 딸에게서 그런 말을 전해 들으면 사위의 한마디 한마디가 뇌리에 박혀 뒤끝이 남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부부 싸움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다.
균형을 잃지 않고 친구의 하소연을 들으려고 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점점 열이 오르며 화가 난다.
차마 “야, 헤어져라”는 말을 내뱉지는 못하지만 다음에 그 남편을 만나면 미운 감정이 남아 있어 표정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어느새 ‘부부 화해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즐거워하는 친구의 전화는 나의 감정을 무색하게 한다.
내 가슴엔 아직도 친구 남편의 못된 말들이 앙금으로 남아 마음이 무거운데
정작 당사자들은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이 태평스럽기만 하다.
아, 말의 유통기한은 너무나 짧아 그 현장에서 그 순간에만 유효한 것임을 깨닫는다.
말이란 대부분 만약 그때 그 공간에서 상대가 마침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꺼내지도 않았을 그런 것들이기 쉽다.
좋은 말은 전하여 세상을 향기롭게 하되 나쁜 말은 그냥 그 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게 하는 게 상책일 수 있다.
윤세영 수필가
대부분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글이어서 좀 늦거나 쉬는 날은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그 글에 답신을 보내면서 제가 보내는 글과 그 글을 함께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중국에서 근무하면서 돌고 돌아 전해지는 한마디에 마음 상해하던 날들이 좀 있었습니다.
제 본의와 달리 곡해하여 자신의 생각으로 각색하여 제앞에서 했던 말과는 다른 얘기였기에 그랬었겠지요.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되고 내 앞에서 웃으면서 말하는 것 조차도 가식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남에게 뒷담화 했던 이야기라 이미 잊었을 것이고 더군다나 내가 모른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을 것이니
지금 되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고 충분히 웃어 넘길만한 일이었는데도 그 땐 그랬습니다.
이제 한국에 와서야 "그 때 그런 마음 버려둘걸!" 하는 후회만 덩그라이 남습니다..
한국 들어오기 전에 가장 가까운 이를 통해서 아래 전해지는 글과 유사한 일들이
제게도 일어났었기에 아래 글은 제게 더 가까히 다가와 제목처럼 "좋은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윤세영 수필가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동아일보에 "윤세영의 따스한 글"이라는 란을 통해서 정기적으로 따스함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검색창의 글제목만 살짝 훝어보아도 벌써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저는 내일이면 4년 만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께 세배드리러 고향으로 출발합니다.
물론 근무 때문에 마음만 보내야 하시는 분들도 계시니, 그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중국에서 근무하느라 멀리서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새해인사만 드렸었었기에...
아마 무릎끓고 정식으로 세배를 드릴 때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눈물 참는 법 좀 연습해서 가려고 합니다.
안되면 '눈물 감추는 법'이라도 배워야 하나요 ...ㅎㅎㅎ
더군다나 이번 귀향 길에는 장모님도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시기에....
문안을 통해서 그동안 죄송했던 마음과 함께 밀린 숙제를 푸는 기분도 덤으로 더하려고 합니다..
몇년만에 만나는 한국에서의 설인데 제가 느끼기에는 좀 조용합니다.
나이 들어가고 제가 사는 이 곳이 약간은 시골 분위기가 강해서 일수도 있지만
제 마음이 그리 느끼라고 강요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저만 이런 느낌이었으면 한답니다.
각설하고
즐거운 명절 설 !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나마 설 인사도 대신합니다.
<편의상 전해주시는 메일 서두를 지움으로써 그 분의 성함은 알리지 않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
■ 남들이 하는 말
새댁은 아랫집 할머니를 피해 다녔다. 툭하면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걸어오니 피하는 게 상수였다.
이웃 간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해해 주고 넘어가 주는 법이 없고
동네에서 다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난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 아줌마가 놀랍다는 얼굴로 “새댁, 새댁이 어떻게 했기에 그 할머니가 새댁 칭찬을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 할머니가 누굴 칭찬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놀랍기는 새댁도 마찬가지였다.
마주치면 예의바르게 인사는 하지만 속으로는 미워했는데 할머니가 칭찬의 말을 했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것은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난 후 변해 가는 자기 자신이었다.
먼발치에서 할머니를 보게 되면 피하지 않고 다가가 더 상냥하게 인사를 하게 되더라는 것.
그러다 보니 나중엔 서로 진짜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딸을 결혼시키면서 지인은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엄마에게 전하지는 말라”는 지침을 주었다.
“너는 다음 날이면 남편과 풀고 다 잊어버릴 수 있겠지만 나는 사위에게 서운하고 괘씸한 감정이 오래 남을 수 있다”고 했다는 것.
누구나 살다 보면 부부 싸움을 할 수 있고 싸움을 하다 보면 도를 넘는 말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막상 딸에게서 그런 말을 전해 들으면 사위의 한마디 한마디가 뇌리에 박혀 뒤끝이 남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부부 싸움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다.
균형을 잃지 않고 친구의 하소연을 들으려고 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점점 열이 오르며 화가 난다.
차마 “야, 헤어져라”는 말을 내뱉지는 못하지만 다음에 그 남편을 만나면 미운 감정이 남아 있어 표정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어느새 ‘부부 화해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즐거워하는 친구의 전화는 나의 감정을 무색하게 한다.
내 가슴엔 아직도 친구 남편의 못된 말들이 앙금으로 남아 마음이 무거운데
정작 당사자들은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이 태평스럽기만 하다.
아, 말의 유통기한은 너무나 짧아 그 현장에서 그 순간에만 유효한 것임을 깨닫는다.
말이란 대부분 만약 그때 그 공간에서 상대가 마침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꺼내지도 않았을 그런 것들이기 쉽다.
좋은 말은 전하여 세상을 향기롭게 하되 나쁜 말은 그냥 그 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게 하는 게 상책일 수 있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