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먼저 공부할 내용에 대한 질문들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을 배울까?", "어떤 것이 중요할까?", "왜 그럴까?", "무엇이 시험에 출제되고 어떤 형식으로 출제될까?"
의문점을 가지고 들어가면 당연히 수업에 열중하게 된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 "아하, 그렇구나!"라는 느낌표를 갖고 교실을 나서게 된다. 당연히 수업은 한결 재미있어진다. 카메룬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질문하는 자는 답을 피할 수 없다." (191쪽)
 
 
무언가를 시작할 때, 그 모습은 사람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시간을 때우는 태도로 임하는 사람도 있고, 힘들더라도 자신이 택한 일이라는 생각에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사람도 있지요. 물론 그 결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입니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학생들에게 수업에 들어갈 때는 '?'를, 나올 때는 '!'라는 자세로 임하라고 말합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무엇이 중요할까?",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그렇게 질문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가면 수업이 끝날 때 "그렇구나!"라는 답을 얻고 마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자세입니다만, 그게 어디 학생뿐이겠습니까. 직장인이든 누구든,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 마무리할 때는 '!'라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필요할 겁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그날 밤 눈사람

현모양처 이야기(박목월 시인 부인의 남편사랑 이야기)

 

       [청목파 시인 박목월님의 아드님, 박동규 문학박사의 이야기]

 

내가 6살 때였습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이었는데, 아버지는 글을 쓰고 싶으셨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방에 상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책상이 없었던 아버지는 밥상을 책상으로 쓰고 있었죠 . 어머니는 행주로 밥상을 잘 닦아서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책상에 원고지를 올려놓고 연필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세달 된 여동생을 등에 업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불 같은 포대기를 덮고서는 옆집에 가서 놀다 올게.”하고 나가셨습니다.

 

나는 글 쓰는 아버지의 등 뒤에 붙어 있다가 잠이 들었죠 . 얼마를 잤는지 알 수 없습니다. 누가 나를 깨워서 눈을 떠 보니까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깨우더니 통행금지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네 어머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나가서 어머니를 좀 찾아오너라.”

 

나는 자던 눈을 손으로 비비고 털모자를 쓰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가 보니까 무릎높이까지 눈이 쌓여있었고 또 하늘에서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집 저 집 어머니를 찾아 다녔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지치기도 하고 , 귀찮기도 해서 집으로 돌아오려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와 제일 친한 아주머니가 아랫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 한 번만 더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전봇대가 있고 그 전봇대 옆에 나보다 더 큰 눈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눈사람 곁을 스쳐 지나가는데 뒤에서 누가 동규야~”하고 불렀습니다. 보니까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철철 맞으며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그 보자기를 들추면서 가까이에 오시더니 너 어디 가니?’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볼멘소리로 어머니를 찾아오라고 해서 아랫동네 아줌마 집에 가는 길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어머니가 내 귀에 가까이 입을 대면서 물었습니다.

아버지 글 다 썼니?”

나는 고개만 까딱거렸습니다.

 

어머니는 내 등을 밀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삽니다. 세월이 갈수록 내 머릿속엔 몇 시간씩이나 눈 구덩이에 서서 눈을 맞으며 세달 된 딸을 업고 있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세달 된 내 여동생이 아버지가 시를 쓸 때 울어서 방해될 까봐 그렇게 어머니는 나와서 눈을 맞고 서 있었던 겁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서 처음 직장에 다닐 때 즈음이야 조금 철이 들어서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한 번 물었습니다. “엄마, 그때 얼마나 힘들었어. 돈도 많이 벌어오지도 못하고 , 그런데 어머니는 뭐가 좋아서 밖에 나가서 일도 하고 힘들게 고생하면서 애를 업고 있었어?” 나는 어머니가 우리 집 생활을 끌고 가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에서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웃으면서

그래도 니 아버지는 밤에 그렇게 시를 다 쓰고 나면 발표하기 전에 제일 먼저 나보고 읽어보라고 해~” 하고 웃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겪어가면서 시인으로 살아가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시 한 편을 읽어보라고 하는 아버지의 배려의 힘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사는 것은 이런 배려를 통해서 서로 사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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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를 떠나서 "배려"의 소중함과 그 배려의 진심을 알아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훈훈한 마음이 됩니다. 언젠가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전합니다. "나는, 우리는 행복한것 같다. 갈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느껴가니.. 난 당신이 없으면 못살것 같애"라고 ...나는 그 말에 대해서 멋없이 받아준 것 같습니다. 

 

참, 오늘이 아내의 생일입니다.

멀리서 아내 혼자 맞는 몇번째 생일인지?

 

"축하한다"고 말을 전했습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2014. 7. 1. 06:47 옮겨온 글

긍정의 힘

2014년의 절반이 끝나는 날 입니다.
상반기에 성과가 미달 되었다고 포기하지 맙시다.
남은 6개월 최선의 노력을 다 하면 됩니다.

불가능이라는 뜻의 'Impossible'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여기에 점 하나를 찍으면 I'm possible이 됩니다.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부정적인 것에 긍정의 점을 찍었더니 불가능한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빚'이라는 글자에도 점.하나를 찍어보면 '빛'이 됩니다.
부정적인 것에 긍정의 점을 찍으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게 됩니다.

지금 당장 긍정의 스위치를 올리시다.
지금 당장 변화의 스위치를 올립시다.

그러면 경쟁력 없던 당신에게도 경쟁력이 생겨날 것입니다.

'마음 심(心)'자에 신념의 막대기를 꽂으면 '반드시 필(必)'자가 됩니다.

희망 없이 살아온 보통 인생이 자기만의 진가를 발휘하면서
특별한 인생으로 반드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탓하지 말고, 경기 불황을 원망하지 맙시다.

기적을 바라지도 말고어딘가 다른 곳에서 기적을 찾는 것을 멈추고서
거울로 다가가 미소를 지어보셔요.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은 바로 당신입니다.
내가 기적이면 됩니다.

2014년 하반기 우리 자신 각자가  기적의 주인공이 됩시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십자가를 자른 사람들

사람들이 아침부터 제각기 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먼 길을 가고 있었다. 다들 자기가 짊어진 십자가가 무거워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꾀를 내어 점심때쯤 톱으로 자기 십자가를 잘라내었다.


"아이고, 이제 좀 가벼워졌네. 진작 잘라낼 걸 그랬어!"


그 사람은 십자가가 한결 가벼워졌다고 좋아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남들을 앞질러갔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도 톱으로 자기의 십자가를 잘라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묵묵히 인내하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갔다.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모두 종착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엔 뛰어넘을 수 없는 큰 도랑 하나가 흐르고 있었다. 도랑 건너편엔 예수님이 미소를 띠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기쁜 얼굴로 예수님을 향해 각자 지고 온 십자가를 도랑 위에 걸치고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십자가를 자른 이들은 그 길이가 짧아 도랑을 건널 수 없었다.

no pain, no gain.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이 없다는 것,

고통은 곧 성취를 위한 준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강한 어머니, 연약한 心性

 

여자는 강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더욱 강하다.

요즘 드세다고들 하는 ‘알파 걸’들을 보면 정말 그렇다. 초·중·고교에서도 여학생 성적이 더 좋다.

여학생의 대학 학점이 남학생들보다 훨씬 좋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회 진출도 더 빠르게 한다. 그야말로 여성 전성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결혼도 포기하고 승진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은 맹렬 여성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당찬 여자들도 여린 구석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무서운 ‘타이거 맘’이었다.

1950년대 약대를 졸업한 약사이고 정부 지원으로 독일 유학을 앞두고 결혼을 하게 됐다.

 나를 낳게 되면서 모든 커리어를 접고 아이들 키우는 일에만 매진했다.

내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다. 우리 셋은 요즘도 모이면 엄마만 아니었으면

우린 공부 않고 놀았을 거라는 얘기를 한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공했을 텐데라고.

우리 삼남매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내비쳤다간 엄마한테 죽을 만큼 혼이 났다.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야 했다.

어머니는 특히 맏이인 나를 완벽히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 갔다.

 현재 우리 셋은 모두 대학에 몸담고 있다.

그러나 요즘도 이게 뭔가 답답해서 몸을 비틀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임을 확실히 알고 있다.

중·고교 시절을 완벽한 ‘범생’으로 보냈던 내가 대학을 가면서 엄마의 감시가 조금 소홀해졌다.

엄마의 관심이 수험생이 된 동생에게 온통 기울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갈구하던 시간인가. 난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놀아 보기로 했다.

수업은 거의 땡땡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 사회대 연극부, 학교 신문사 등등을 기웃거리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다. 운동권에 매력을 느껴 쫓아다니기도 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어찌 보면 얼마간의 보상심리도 있었던 것 같다.

끼가 있는 나로서는 공부만 열심히 하고 보낸 그 어린 청춘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


당시 여학생 숫자가 상대적으로 너무나 적었던 서울대 캠퍼스에서

나는 여자 친구보다 남자 친구가 더 많았다.

남자를 사귀면 안 된다는 구태의연한 연애 관련한 엄마의 잔소리는 매일 계속됐지만,

친구가 좋고, 특히 남자 친구는 더 좋은데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휴대전화가 없던 당시 집으로 걸려오는 남자 친구들의 전화는 걸려오는 즉시

엄마에게 막혀 전달이 안 됐다

. “학생, 무슨 과야? 공부를 해야지 왜 이렇게 매일 몇 번씩이나 전화를 하고 그래?

공부해” 하고는 확 끊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무례한(?) 전화에 짜증이 난, 한 남자 친구가 어느 일요일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댔다.

어머니를 직접 만나서 자기가 그렇게 엉망은 아니며,

공부도 열심히 잘하는 사람임을 설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초인종을 계속 눌러대던 남자 친구와 옥신각신하던 중 결국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다.

친구가 인사드리고 싶어한다고 전하자 엄마는 예상 외로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대문을 지나 정원 쪽으로 걸어 들어오는 남자 친구의 모습을 거실 창문으로 보고 있던 엄마는

갑자기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어느새 친구는 들어와 소파에 앉아 있건만 엄마는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왜 그러지, 화가 나셨나? “엄마 내 친구 지금 거실에 와 있는데”라고 하자

 “그래 됐다. 다음에 이야기하자. 너희들끼리 이야기하렴.”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엄청 화가 나셨구나. 남자 친구 사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집에까지 끌어들였다고

단단히 화가 나신거구나. 애고, 난 죽었다.

그러나 그 후 엄마는 화를 내기는커녕 그 일에 대해 그 어떤 언급조차 없었다.

며칠을 눈치만 보고 있다가 어떻게 잘 넘어갔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흘러 내가 아기를 낳고 그 아이가 대학을 가자 문득 엄마가 한말씀 하셨다.

“너도 딸 키워보면 알겠지만 딸의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게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아니?

무얼 말해야 할지, 어떻게 보일지가 무척 신경 쓰이니, 너도 미리 준비를 해둬야 할 거야.”
그러면서 그 옛날 건장한 청년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내가 어떻게 보일까,

초라해 보이거나 늙어 보이는 건 아닐까,

그래도 우리 딸을 생각하면 예뻐 보여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하지 등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로 힘들어서 안방으로 숨으셨다는 이야기를 20년이 훌쩍 지나서 문득 하시는 거다.

그제야 엄마의 그날 행동이 이해가 됐다.

그때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신 건, 화가 난 게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수줍고 어색해서였구나!

언제나 야단치고 무섭기만 하던 우리 엄마도 그렇게 강한 것이 아니었구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햄릿은 그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 비난과 원망의 독백을 한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20여 년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모습을 세월이 지나 되돌아보면서 그 마음을 새삼 헤아리게 된다.

무서운 호랑이 엄마, 강인하기 그지없는 엄마도 결국 여자였다. 연약한 심성(心性)의 수줍은 여자였다.


곽금주/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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