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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27 우화의 강.... 마종기
  2. 2013.07.17 플라타나스 김현승
  3. 2013.06.28 풀꽃 나태주, 그꽃 고은
  4. 2013.06.25 어머니의 사랑.
  5. 2013.05.13 도랑가 잣나무 생각 ..김남극

 

 

 

 

 

나는 마종기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데뷔 시부터 최근의 산문집"우리 얼마나 함께" 까지...

최근의 산문집은 직접 구할 수 없어 대략적인 흩어보는 것으로 ...

그를 처음 만나는 날은 광화문의 교보문고에서 스치우듯 만났다.

바람의 말에서 발췌된 내용으로...

그 덕에 그 시인의 시를 읽게 되고 마음에 간직하게 되었다.

 

특별히 고운 시어라기 보다는

웬지 그의 시를 읽으면 내가 느껴졌다.

나도 나를 잘 모르기에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시를 두번 읽고 세번 읽어내리면 웬지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고 그의 삶을 일었던 것이다.

 

                  <130727>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그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 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시인 마종기는 1939년 1월 17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여성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4년 가족이 모두 귀국해 개성에 정착, 이듬해 마종기는 개성의 만월국민학교에 입학했다. 1947년 가족이 모두 서울 종로구 명륜동으로 이사하고 마종기는 혜화국민학교 3학년에 편입한다. 그의 가족은 여기서 1965년까지 살았다.

1950년 봄 6학년이 된 마종기는 교내 신문에 처음으로 동시를 발표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마산으로 피란가 월영국민학교에 편입한 마종기는 그 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 서울중학교 2학년 때 마종기는 평생의 지기가 되는 시인 황동규를 만난다. 같은 해 마종기는 제1회 ‘학원문학상’에 산문을 응모해 입상하기도 했다. 1954년 서울고등학교에 진학한 마종기는 문예반 지도교사로 있던 시인 조병화를 만난다. 문과반 학생이던 마종기는 과학 기술 공부를 권하는 친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진로를 바꾸고 1959년 연세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본과 1학년 재학 중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해부학교실’ ‘나도 꽃으로 서서’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1960년에 출간한 첫 시집 ‘조용한 개선’으로 제1회 연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마종기는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수련의 과정을 거쳐 방사선과 전문의가 됐다. 오하이오 의과대 방사선과 교수 시절 ‘올해 최고의 교수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부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 의사 생활에서 은퇴한 후에도 모교인 연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로 ‘문학과 의학’을 수년간 강의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꾸준히 한국에서 시를 발표했으며, 친구인 황동규·김영태 시인과 함께 공동시집 ‘평균율’ ‘평균율 2’를 펴냈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만 10년이 되는 해에 출간한 ‘변경의 꽃’을 시작으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하늘의 맨살’ 등의 시집을 꾸준히 선보였다. 또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등의 산문집과 가수 루시드 폴과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을 출간했다. 한국문학작가상, 미주문학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옮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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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타나스

                                     다형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나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나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외로울 제

플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나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나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길이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이 시의 저자인 김현승 시인은 1913년 4월 4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1975년 4월 11일 작고하신 분입니다. 개신교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 김창국(金昶國)과 어머니 양응도(梁應道)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평안남도 평양 출생이며 제주도 북제주전라남도 광주에서 성장하였다.(출생지는 평안남도 평양이며, 일곱 살 때부터 전라남도 광주에서 자랐다.[2]) 숭실전문학교를 중퇴하였다. 1934년 무렵부터 시작을 계속하다가 해방 직전부터 침묵을 지켰고, 6·25전쟁 직후부터 다시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숭일중학교 교감, 조선대·숭전대 교수, 한국 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감각적 언어망을 통한 참신한 서정으로 생의 예지를 추구한 시를 썼다. 제1회 전남문화상을 수상했다. 작품집 《김현승 시초》, 시로는 〈견고한 고독〉, 〈옹호자의 노래〉, 〈절대 고독〉, 〈눈물〉 등이 있다. 숭실전문 대학교에 재학 중에 교지에 투고했던 시인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이라는 시가 양주동 시인의 천거로 ‘동아일보’에 발표되면서 본격적으로 문인의 길을 걷게 된 김현승 시인은 한국 문학가협회 중앙위원과 상임위원을 역임하며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셨습니다. 또한 숭실전문대학교와 문리대 교수를 역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김현승 시인이 남기신 시집들은 많지만 그 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집으로는 ‘견고한 고독’ ‘옹호자의 노래’ ‘절대 고독’ ‘눈물’ 등이 있습니다.

 

커피를 좋아하셔서 호도 다형으로 지었고 이런 김현승 시인은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모더니스트와 이미지스트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그 뒤로는 한국 시단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 시인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습니다. 광복을 전후한 당시에 모더니즘과 감각적 이미지즘 시풍이 지배적이었던 시기에, 지성적 감성의 서정시를 정립하여 현대시의 지평을 넓힌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합니다.

김현승 시인의 시는 서구 기독교의 오랜 전통인 청결한 윤리의식과 한국의 지조와 절개를 중히 여기는 선비정신이 혼합돼어 있는 독특한 정신주의를 구현하기도 합니다. 신과 인간 사이의 고독과 신과 인간의 양심 사이에서 참된 삶과 자아에 대한 지적 성찰을 통해서 지성적 감성세계를 개척한 우리시대의 시인. 이러한 시인이 표현한 신과 인간 사이의 고독은 우리가 함께 본 시인 플라타너스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올해가 탄생 100주년으로 많은 기념행사가 열리기도 했는데 광주에서는 작년 9월 22일에는 '다형 김현승 문학제'가 광주남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분이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재단내 대학교의 교수로 근무하셨기에 그 분의 제자분들이 학교 모교 선생님이기도 해서 그분의 일화와 얘기를 수업중에 들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그 분의 시를 한편 한편 올려볼까 합니다.  

 

참고로 광주 무등산 자락에는 김현승 시인의 시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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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나 태 주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 꽃

               고  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위의 "풀꽃"은 언젠가 내 좋아하느 시에 올라 있는 시이고

아래 "그 꽃"은 새로이 옮겨 보는 시입니다.

아침에 카톡으로 받은 시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시는 굳이 길 필요가 없습니다.

짧은 단어 하나에도 그 의미가 그대로 전해지면

그게 바로 시입니다.

 

누군가 산에서

"아"햇더니 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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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길 카톡으로 전화를 넣어달라는 아내의 전언에

식사 장소에 내려서 전화를 넣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수술을 하셨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넣엇으면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수술 날을 잡으시고도 내게는 일언반구가 없었던 것입니다.

엊그제 토요일 저녁에 전화를 햇을 때에도 ...

 

아냐와 통화를 마치자 마자 어머니께 전화를 넣었습니다.

평소처럼 나라고 말하고 나서 어디시냐고 묻자

"집이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들여옵니다.

나도 모르게 "아니 벌써 퇴원하셨어요? 정말 어디세요"

"응 집이야"

그러다 내가 아내에게 전해들엇다고 말하자 "이야기 하지 말랬더니" 하십니다.

 

멀리 이국에 있는 아들이 마음 상하고 걱정할까 봐서 아내에게 부탁도 하고

내게는 시치미를 뚝 떼신 것 입니다.

그 마음이 내게로 그대로 전해져 왔습니다.

 

수술 잘 도엇으니 걱정마시라고 여쭌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가 식사하는 내 자리로 옮겼습니다.  

 

일을 마친 후 집에 들어와서 아내에게 전화 통화를 전했습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늘 이렇게 전해져 옵니다.

 

               <130624>

 

더하는 시 하나로 마음을 함께 나눈다.

 

사모곡

                      김태준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길 밖에도 가지 않고,
어머니는 달이 되어
나와 함께 긴 밤을 같이 걸었다.


  

 

 

 <본사진은 인터넷에서 옮겨 왔습니다. 저작권 위배 요청시 바로 삭재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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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완도군 청산도 에서 , 서편제 촬영지자 유네스코지정 Slow city>

 

좋아하는 시 함께 나눕니다.

옛 블러그에서 그대로 옮겨 옵니다.

시는 이렇게 시간을 초ㅓ월해 줍니다.

          <130512> 

 

 

쉽게 달아오르고

돌아서면 또 다시 남의 일이 됩니다.

그렇게 반복되어 왔습니다.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분법으로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다고 편을 갈라 놓습니다.

사람을 보는 잣대의 기준을 자신도 모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상대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익숙한 탓입니다.

 

그렇더라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시간 문득 함께 나누고 싶은 시입니다.

그냥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도랑가 잣나무 생각

                                            김남극 

 

저 도랑가 잣나무는 억울했을 것이다.

한 번쯤은 누구에겐가 기대고 싶었을 것이고

한 번쯤은 주저앉아 울고 싶었을 것이고

또 한 번쯤은 옆 밭에서 감자 캐는 여자와

바람이 나고도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 도랑가 잣나무는

강한 듯해야 하고

의연한 듯해야 하고

늘 한 번씩 자란 증거를 보여야 하고

한 해 건너 잣 꼬쟁이를 정수리에 달아야 하니


꼭 그래야 하나

그런 척 해야 하나


문고리에 손이 쩍 달라붙는 겨울아침

우물에서 올라온 지구 내부의 숨결을 하얗게

뒤집어 쓴 잣나무를 생각한다.

밤낮으로 생각한다.

 

시집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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