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부터 전에 근무하던 여수의 동료들이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온다.

동백꽃에, 벚꽃에, 개나리 꽃에  매화에 그리고 앞서 핀 진달래 까지.

이번 꽃샘 추위에 잠시 얼어 붙을듯 하다.

꽃샘 추위가 아무리 춥다해도 바람까지는 차지는 않다.

 

어제 아들 녀석 훈련병 수료식을 마치고 이등병이 되었다.

엄마가 작대기를 달아주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활짝 웃는 모습에 나는 웬지 모르게 마음이 아려왔다.

중국으로 나오기 전에 보앗던 헤맑던 그 모습 그대로다.

전화 통화에서도 나보다 더 밝고 명랑해서  잠시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걸었다.

 

오늘은 기분이 내게 있어서는 그랬다.

 

위의 꽃들은 내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 곳은 꽃소식이 없다. 아니 내게만 전해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주위를 둘러 보아도 보이지를 않는다  새움들만 느껴질 뿐이다.

 

꽃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의 하나라는 것에 공감한다.

 

                                 <130321>

 

 

 

 

동백 꽃잎 저만치서 봄은 오려는가

 

누구에게나 정든 꽃이 한두 개 있다.

 

장미꽃도 되고 백합도, 수선화도 된다.

아, 여름날 백사장 한쪽에 비껴 피는 외로운 해당화는 어떤가?

누군가가 한국 사람에게 가장 좋아하고 또 애틋한 꽃을 들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동백꽃을 들지 않을까.

동백꽃, ‘아우라지 뱃사공이 오기도 전에 싸리골 울동백이 다 떨어진다’는 정선 아리랑도 있고

‘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이 그립다는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도 있다.

동백, 한국인에게 더없이 애틋한 꽃이지만, 꽃 중에서는 구석에 있는 변두리 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한국인들이 이 꽃을 주인공으로 노래와 시를 읊어 왔다.

하지만 동백꽃을 자주 접하지 못한 서울 사람들은 남녘땅 동백꽃의 정서를 알기가 쉽지 않다.

 서양에서도 장미 못지않게 사연이 많은 꽃이 동백이다.

그래서 알렉상드르 뒤마는 일찍이 1848년에 ‘춘희(椿姬)’ 즉 ‘동백아가씨’라는 사회 고발 성격이 짙은

소설을 발표했으며 베르디는 이를 토대로 비운의 여주인공 비올레타 가슴에 동백꽃을

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바로 ‘라 트라비아타’다. 미당(未堂)은 ‘선운사’라는 짤막한 시를 통해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만 목이 쉬어 남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동백을 찬찬히 보다 보면 놀라게 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다.

마치 깊은 산사를 찾은 느낌의 적막감을 준다. 크기 또한 아담 사이즈다.

그래서 꽃을 보면 원산지와 관계없이 토종 꽃이라는 느낌이 든다.

꽃은 엄동설한에 핀다. 눈 내린 하얀 겨울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동백꽃이다.

백색 겨울과는 대조적인 핏빛 꽃봉오리가 초록 나무를 우산처럼 덮고 있다.

색감이 워낙 눈부셔 빨갛게 멍이 들었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아주까리 동백이 제아무리 예뻐도 동네방네 내 사랑만 못하다’는 말은 외려

동백의 매력이 엄청나다는 의미일 게다.

 그러나 동백꽃은 굴곡이 많은 꽃이자, 기성세대들이 반추하기조차 싫은 기억들이 많다.

권위주의 시대, 핍박의 상징과 같은 역사를 지녀 왔다.

 왜색풍이 짙다고 해서 아예 금지곡으로 묶여 한 세대 동안 불리지 못한 노래가 바로 ‘동백아가씨’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동백꽃을 두고 “한국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정한의 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꽃은 한국인에게는 슬픔의 역사다. 빈한하고 억눌려온 한국인들에게는 위로하는 매개체가 된다.

동동구리무와 함께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머릿기름이 바로 동백기름이고,

사람 키 높이의 동백 숲은 가난한 청춘들이 몸을 숨겨 사랑을 나누는 아늑한 공간이 된다.

 하지만 꽃은 조선의 지배계급에게는 오랜 세월 천대를 받아 왔다.

동백은 질 때 꽃봉오리 전체가 몽땅 떨어지는 묘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사람 목이 단칼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해서 사대부 가문에서는

아예 집 안에 들여놓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그 뇌쇄적인 아름다움에 비해 어느 날 순식간에 후두둑 떨어지는 모습이

허탈하다 못해 너무 허망스러워 사대부들의 외면을 받아 왔다.

그래서 일찍이 조선의 기득권 세력들은 예상치 못한 불길한 일들이 갑자기 생기는 것을

동백꽃 춘(椿)자와 일 사(事)를 조합해 ‘춘사(椿事)’라고 표현했다.

이 같은 정서로 인해 조선의 양반들은 물론 일본의 사무라이 계급도 극히 꺼리는 꽃이 바로 동백꽃이다.

‘라 트라비아타(椿姬)’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로 자리 잡은 것도 이 같은 꽃의 숙명이

그네들의 정서와 가장 근접해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동백꽃은 더 이상 ‘외면받던’ 그 옛날의 외로운 꽃이 아니다.

남녘땅, 떠나지 못한 겨울이 서성거리는 2월의 땅 밑에서는 연두색 생명들이 터져 나오려고 용을 쓰고 있다.

그 가운데 무리로 선 동백 숲은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꿈틀거리는 관능으로 일렁거리고 있다.

한때는 설움 많았던 슬픔의 꽃, 하지만 잿빛 겨울에 선홍빛이 외려 눈부시다.

 2월, 정월과 삼월에 끼어 있어 존재감조차 희미한 계절도 이제 떠날 채비에 분주하다.

빨갛게 멍든 동백 꽃잎과 함께 저만치 봄이 오고 있다.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김동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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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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