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고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시건설 7월호 1939>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이다.

 

스물셋에 쓴 작품으로 그의 작품 중 독자의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살아온 일생은 양지만을 쫓았으나,

시인의 관점으로만 보면

한국 서정시, 우리의 살아있는 전통신화적 그리움으로 살아있는

그의 작품의 영향력을 무시하고서는 한국 현대시와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의 처절한 고백 "애비는 종이었다" 로 시작되는 이 시는

스물세살의 나이에서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으련다"고 다짐아닌 고백을 한다.

아마 이런 다짐이 그를 양지로만 좇게 만든 것은 아닐련지!

 

실제 그의 아버지는 종이 아니라 마름이었다고 하는데 ...

시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시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노래이기에.

시적 진실을 그는 적절히 활용하여 아름답고 시리도록 표현해 낸다.

노년 그의 제자중 한명을 잘 았는데 이제는 모르겠다.

한 때 유명한 시인을 꿈꾸었던 그였는데.....

 

아무튼 다시 읽어도 좋은 시이다..

 

그중에 한구절을 고르라면 난 단연코

스물세해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었다"라는 대목이다.

 

나는 다시 묻는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 일까?" 라고

 

 

온 나라가 슬픔 속에 젖어 있다.

나도 어느새 기성세대를 지나서 구 세대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힘없이 .....

 

누군가의 세월호 참사의 뼈있는 한마디를 더하여 얹어 놓는다.

 

Ein_Gespenst@Nein_Danke

침몰한 세월호 뿐이 아니라 , 어쩌면 한국사회전체가

침몰하고 있으며, 우리는 "침착하게 제자리를 지켜라"라는

윗사람들의 말만 믿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을 숨길 수가 없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누군가의 SNS글입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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