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중학교를 마치고 짧은 미술 공부에

예고를 진학하여 합격자 발표를 마친 그 금요일 오후에

편하게 여수로 내려와 2박3일을 둘이서 보냈습니다.

순천만에, 악양 동네밴드 공연에, 낙안 민속마을 그리고 강진 다산초당에 백련사

강진 무위사를 거쳐서 광주 본가(할머니 댁)으로 즐겅누 여행이었습니다.

함께 서울 오는 길에 보여준 무지개도 그 녀석의 평생 추억이 될 것입니다. 

 

역에서 녀석을 마중차 기다리는 데 그 설렘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역에서 기다리는 마음이 그랬을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저녁에 들린 지리산 악양마을의 동네벤드 축제

 

그곳에서 이원규 시인은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이라는 개막시를 낭송하셨고

행사중 하모니니커로 함께 한 박남준 시인!

 행사 후 아들 녀석과 시인은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직고나서 설명을 해도 유명한 시인인줄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 지리산 시인의 글을 적은 옛 글인데도

기분은 여전히 그 때처럼 변함없습니다

 

 

                    불행히도 이원규 시인과 함께 한 사진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원규 시인(피아산방)께서 직접 지적해 주셔서 정정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낮은 목소리, 사랑의 귓속말이 세상을 바꿉니다.

크고 빠르고 높은 목소리는 일시적인 긴장과 공포를

유발할 뿐 마음 깊숙한 곳 까지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낮고 느린 목소리로 속삭이면,

뜨거운 입술이 닿기도 전에 귓볼의 솜털들이

바르르 한쪽으로 쏠리다가 일어서고,

그러는 사이 사랑의 최면술은

시작되는 것이지요.

 

          - 이원규의 <지리산 편지> 중에서-

 

생각 해보면

아이들에게 간혹 큰 소리를 냅니다.

커가면서 말 잘 듣는 아이에서 반항하는 아이처럼

스스로 자주 묻는 질문이 하나 생긴 것입니다.

"벌써 사춘기인가?"

그러다가 진짜 사춘기인지도 모르고 지나다가

아이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도 간혹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느낀 일입니다.

목소리가 커지는 때는 꼭 아이 정면에 서서  말합니다.

자연스레 내 목소리가 커지고 높아지는데도

도리어 아이는 변함없이 차분합니다.

 

자리를 바꿔 보았습니다. 아이의 옆으로 .

나도 모르게 소리가 작아집니다.

자리 한번 바꿔보니 내 분위기가 바뀝니다.

즉 아이와 싸움(알고보면) 하는 모드에서  

이제 얘기를 나누는 모드로 ...

 

저절로 목소리가 낮아지고

내가 차분해지니 모든게 물 흐르듯 해결됩니다.

 

그 후론 사무실에서도

후배 사원들과 업무를 주고받을 때도

꼭 내 자리 옆에 앉게하고 얘기를 나눕니다.

나는 앉고 , 상대는 서있는 그런 딱딱한 분위기가 저절로 사라졌습니다.

명령이나 지시를 주고 받는게 아니라 서로 대화를 주고 받게 된 것이지요.

 

갑자기 읽은 글귀에서 느낀 소감이었습니다.

 

낮은 목소리, 사랑의 귓속말이 세상을 바꾼다 말에 공감하면서

 

                 <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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