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직원과 얘기하다가 내가 차를 좋아한다니까 자기 고향이 복건성이라면서 나눈 얘기..저도 새로이 알고 옆에 통역하던 그 회사 직원도 새롭게 알았답니다.

시작은 마카오 얘기가 아니라 근처 아는 공장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그 공장의 소재지가 마조만(媽祖彎)란 곳이라고 하기에 그 마조의 쯧이 무어냐고 물어보니 마카오까지 얘기가 진전되었습니다.  천진의 고문화 거리에 있는 천후궁도 같은 사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마조는 태국까지 이어지는 중국 남부의 어부를 지켜주는 신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의 용왕신과 ㅂ다 할머니정도 ...

 

마카오의 유래

 

마카오는 지난 199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에 귀속되었지만, 1557년부터 적어도 4세기 이상의 기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그런 까닭에 중국문화와 포르투갈 문화가 공존하고 혼용된 곳이다. 사실 마카오는 중국본부와   멀리 떨어진 광동성의 동남부 해안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중원문화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말하자면 중원문화의 변방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동남부 해양문화 혹은 동남아문화의 특성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2.

마카오 기행은 지난 해 2월 21일에 한나절 정도 진행되었다. 여행 프로그램이 대부분 그렇듯이 별볼일 없다고 생각되는 곳은 그저 스쳐지나가듯 구경하는데 그친다. 마카오처럼 말이다. 하지만, 주의해서 보면 유적도 적지 않거니와 그 의미 또한 독특하다. 이 중에서 소개하고픈 것이 마조각이다.

 

마조각이란 마조(媽祖)를 모신 사당을 의미한다. 현지에 세워져있는 안내판에는 마각묘(媽閣廟)로 쓰여있다. 현지의 안내원에게 들으니, 마카오는 마각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곧 마카오의 상징인 셈이다. 이 한 가지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속된 말로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사당을 부르는 이름 중의 또 하나는 천후궁(天后宮)이다. 이는 청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봉호이자 건물명이다.

 

마카오 사람들에 따르면 천후궁보다 마조묘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관제(官製)의 엄숙하고 딱딱한 명칭보다 오랫동안 친숙하게 사용하던 이름을 선호하는 셈이다. 마조란 복건어로서 할머니를 뜻하기 때문이다.연구자들에 따르면 마조의 사당은 광동성과 복건성에 가장 많으며, 원래 광동성 광주부 향산현(오늘날의 중산시)의 일부였던 마카오에도 오래전부터 이 사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 마조각은 <안내문>에 따르면 명나라 홍치 원년(1488년) 혹은 만력 33년(1605)에 세워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이미 복건의 상인들이 이곳에왔던 성화연간(1465-1487) 혹은 천순 2년(1458)에 창립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여하튼 마카오에서는 가장 오래된 마조 사당이다. 마조 사당이 대체로 원대와 명대에 많이 세워진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사당도 그 초기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 위치는 마카오 반도 서쪽 끝의 내항 입구이다. 뒤로는 낮은 산이 있고, 앞으로는 좁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 곳으로 전통시대에 포구가 자리하기에 좋은 위치이다.

 

건물 배치는 전형적인 사당형식으로 정문, 패방, 정전, 홍인전, 관음각, 정림선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들의 성격이 각각 유교적, 도교적, 그리고 불교적 특성을 내포한 것이므로, 마조각은 그 점에서 전형적인 삼교합일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건물들은 산 사면 아래쪽에 낮게 지어졌기 때문에 웅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연 속에 묻혀 있는 느낌을 준다. 북경이나 남경과 같은 대도시의 사당들의 크기가 어마어마한 것과 비교된다.

 

3.

이제 우리에게도 조금씩 알려진 마조는 본래 송나라 때에 복건성의 미주(湄洲)라는  섬에서 태어난 역사적 인물이 신으로 승격된 전형적인 사례이다. 중국의 민간 사회에서는 대체로 그 지역사회에 공을 세운 인물이 사망하면 신으로 승격시켜 공동체의 수호신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임묵랑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 생전에 구름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초인적 영력을 가지고 지역민들을 재난과 불행으로부터 구해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선원들에게는 바다의 신으로, 상인들에게는 재물의 신으로, 또 수군에게는 전쟁신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예컨대 원왕조는 동남아에 대한 해상 원정시 그녀의 보호를 받기 위해 마조를 ‘天妃’로 승격시켰다. 쿠빌라이 시대 때의 일이다. 민간신이 국가의 신으로 변신한 셈이지만 이 조치는 이미 송대에도 이루어졌다. 12세기 항주로 천도한 남송대에 송왕조가 남부의 안전을 위해 영혜부인(靈惠夫人)으로 봉하였다. 청의 순치 때에는 천상성모로, 건륭제 때에는 天后로 봉해졌다. 청조의 이런 조치는 광동 연안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을 제압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곧 마조-> 영해부인 ->천비 ->천상성모 ->천후로 승격되어 왔던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복건지역의 연안무역상인들이 숭배하였던 해신으로 그 성격을 강화하였고, 이 때문에 포구가 있는 곳곳에 그의 사당이 세워졌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인천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인터넷 정보, 예컨대 네이버의 지식백과에는 마조의 출생연도를 당나라 현종(685-762) 때라고 하였으나, 이는 오류이다.공인된 출생연도는 960년이다.)

 

[출처] [마카오여행] 마카오의 유래는 마조묘(媽祖廟)|작성자 옥가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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