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에서.나쓰메 소세키>


엊그제 읽은 책 "생각버리기 연습" 에 이런 글이 있었다.

"비밀일기를 써라"

그 이유는 공개되는 글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지 못하므로 비밀일기를 통해서 노여움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라고...

맞는 말이다.

아주 오래전 PC 통신 시절에 글을 쓰면서 남을 의식하는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실감하고서야 그 이 후에는 느낌대로 글을 써왔다. 그래도 공개된 글에서는 아무래도 마음놓고 표현하는데 제약이 따른다
그ㅡ래서 간혹 비공개로 놓곤 한다.

일주일 전에 소리내어 운적이 있었다. 요즘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잦다. 쉽게 센치해지고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슬픈 것에 훨씬 더 민감해진듯 하다.
아마도 신체적 병보다는 앞날에 대한 생각이 마음까지도 약하게 만드는 듯하다

내가 사는 곳에서 안산 자락길 (또는 안산 초록길) 을 걸으려면 홍제천을 따라 2키로미터 정도 걷다가 만나는 인공폭포를 조금 못미쳐서 징검다리를 건너게 된다.  징검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은 서대문구청으로 가는 길이다. 난 왼편 물레방앗간 사잇길로 호젓하게 올라가는 코스를 선호한다. 그 길자락에  안산공원 초입의 허브동산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겨울을 나느라 밀짚으로 덮혀있다.

이 허브 동산은 중간 중간에 놓인 벤취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거나 지는 석양의 해를 바라보기에 참 좋은 휴식 공간이다.  나 역시 산에 오를 때 마다 잠시 앉아서 쉬기도 하고 겨울의 햇살을 즐기곤 한다.

 그날 따라 나무 벤취에 앉아 저물어가는 석양 노을 해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냥 소리내어 울고 싶어졌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마침 아무도 없어서 마음놓고 울 수 있어 좋았다

가장 최근에 소리내어 운 기억은 지금으로부터 십일년전  아버지를 멀리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후 삼오를 지내면서 아버지 사진 앞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었다. 당시 아버지를 보낸 슬픔과 서운했던 동생들에 대한 생각으로 더 서럽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함께 그 모든 것을 실어보내고 싶었다

아버지의 임종부터 삼오 직전까지 눈물 한방울 보일 수 없었기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마치 봇물터지듯 그렇게 한꺼번에 터트렸던 것 같았다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눈물이 날 때가 잦아졌다.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고 스스로 느낀다.
그러나 슬픔은 아니다.

지금까지 늘 바쁘게 지냈고.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가장으로써의 책임감에
외아들로써의 보이지 않지만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의무감도 한몫을 단단히 했을게다.

그랬던 내가 요즘 달라졌다
최근에는 내 의도와 달리
하던 일에서 벗어나
거의 무위도식(?)하는 생활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변한게 하나 더 생겼다.
예전처럼 억지로 감정을 숨기면서까지 강한 척, 선한척 하고 싶지않다는 점이다.

특히 내가 처한 위치로 인한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서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고 성인군자처럼 주위 사람들을 대해 왔던것 같다
그래서 내면의 급한 성격도 감춰진듯한데 갑자기 튀어나오는 성격에 아내에게 간혹 상처도 주었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도 내 감정에 따라 싫은 건 싫다고 표현하고 살기로 했다.
체면이나 내 위치 때문에 나를 감추고 살고 싶지 않고, 내가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요즘 눈물이 잦은 이유는 많이 떨어진 내 자존감으로 인한 게 가장 클게다.

암환자가 되면서 주위사람들과 자연스레 유리되고(서로 연락하기가 주저된다) 더군다나 아무 일도 할 수없는 일종의 무력감을 실감하기에 그게 원인이자 상승작용을 일으키어 이유도 없이 눈물을 흐르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루를 마칠 저녁마다 드는 생각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때론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만나는 이들이나 메시지로 전하는 많은 이들의 위로는 늘 한결같다.

 ‘할 수 있다!
  힘 내세요!
  반드시 이겨낼거다.’

그럼에도 암관련 특히 나와 같은 암으로 고생하는 암환우들의  현실 속 글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낮은 생존율과 완치율 그리고 높은 재발위함성에 따른 심리적 비관과 포기 등, 항암으로 부딪히는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직면하는 현실적인 경제  문제들에 대한 절망들이다. 다군다나 그 오랜 싸움의 결과는 늘 비관적이다
 
이런 글들을 보게되면 나도 모르게 기운이 없어지고 힘이 빠지면서 부정적인 기운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그런 글들을 아예 의도적으로 멀리하게 되었다.
요즘은 다행스럽게 그 단계를 벗어나 그분들을 위로하고 내가 아는 지식과 정보를 최대한 공유하려고 노력중이다.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했을 때, 슬프고도 슬픈 이별의 노래에 더 이끌리게 되고 그게 역순환된다고...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불행해지고 긍정적인 희망적인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행복해졌다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 요절 가수들의 마지막 노래는 늘 회색빛이 감도는 노래들이었다.

 암병동에 들릴 때 마다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크고 넓은 암병동이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병실이 나지않아 입원하려고 대기순서를 기다리는 걸 보면 나와 같은 암환자들이 정말 많다는 현실을 실감한다

아니 외래 약물치료실도 부족해서 복도에서 주사바늘을 꽂고있다가 병실배정을 받을 정도이니...
 
이런 모습을 볼 때 마다 이내 '힘든 사람이 참 많구나, 결코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 역시도 항암치료의 차수가 더해지면서 길어질수록 신체적으로 힘들어진다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암이란 놈은 우리가 힘들어야 이길 수 있는 것 같다.  치료 과정, 먹는 것 그리고 운동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지만 환자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암환자들 수기에서 본듯하지만
 "항암,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없다" 는
어느 누군가의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암환자들은 심리적으로 약해지고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약한 마음에 사로잡히는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 모든 건 오로지 나와의 싸움이므로
스스로 힘을 내야한다고 최면을 건다.

즉 힘들다고 누가 알아주길 바라서는 안된다.
그러는 순간 약해지고 암에게 지는 것이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견디고 버티고 이겨내야 암과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암에 걸려 슬프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기쁘다.

내가 무기력해져서 슬프고,
가족에게 더없이 미안해서 슬프지만,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겸손을 되찾아 기쁘고
더 적은 것에 감사할 수 있음에 기쁘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나는 최악의 바닥이기에
이제 나아질 일만, 은 일만,
감사할 일만 남은 것이다.

날이 지난 어느날에 내 스스로에게
"참 잘 이겨냈다"고
대견해하며 칭찬을 하는
그날의 내 모습을 그려 놓는다​​.
이미 난 행복하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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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일상을 통해 사람사는 이야기와 함께, 항암 관련 투병기록 및 관련 정보 공유를 통해 치유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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