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활한 종로서적을  떠올리며

올해 삼월인가 친구의 사진전시회에 가느라 인사동 가는 길에  종각역 근처의 종로서적을 다시 보았다. 
언젠가 문화뉴스에서 종로서적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한동안 가까운 오목교역 근처나 광화문 교보문고를 들렸었기 때문이다.  광화문은 매분기마다 바뀌는 광화문 글귀를 직접보는 재미로 들리기도 했다. 물론 여의도애서 근무할 때는 여의도역 근처의 글귀로 대신하기도 했었지만...

어찌되었든 내 나이 또래의 연배들에게 있어 종로서적은 유난한 추억이 어려있을 서점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길목에서 종로서점의 역할은 80년대를 살아간 의식있는 청춘들이라면
꼭 한번씩은 거쳐간 곳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지방근무시절 서울 출장오면 거의 빠지지않고 발걸음이 향했던 그곳 종로서적으로 향하였다. 
언제가는 그곳 6 층(?) 모코너 앞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었다.

그땐 그랬다

물론 광주출신인 나는 광주의 나라서점이 서울 종로서적 역할을 했다. 
그렇게 종로서적을 거쳐간 이들이 
지금은 나이들어,  당시 우리나이 정도의 자녀를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러던 종로서적이 어느날 문을 닫았고 나의 기억 속에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져 갔었는데 언젠가 작고하신 박완서님의 글을 보고서 다시 기억했던 곳이다.

그렇게 기억의 창고 저 편으로 사라졌던 종로서적이, 나라서적의 추억과 함께
내 기억 속에서도 부활을 했다. 

오늘 옆자리의 동료와 얘기를 나누다가 종로서적 얘기가 나와서 다시 기억을 되살려낸다.

종로서적은 1907년 기독교서점으로 시작된 한국 최초의 서점으로, 2002년 6월 4일 월드컵 폴란드 전에서 우리나라가 승리하던 날, 종로서적은 역사 속에서 그 문을 닫았다.

당시 서울대 법대 학장의 “종로서적이 망했는데,  그깟 월드컵이 대수냐!”고 통탄 하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런 종로서적이 14년 만인 지난 겨울에 다시 부활하여 지나가던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다시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그안에 들어서서는 옛감흥은 그리 크지않았다.

"내 나이가 많이 들었나 보다." 라는생각을 했음도 솔직하게 밝혀둔다.
 
<180901>

박완서 님의 "호미" 에서 인용한 글을 보다가
아주 오래전 글을 뒤져 보았습니다.
그 마음 그대로 입니다.
아래에 말한 광주의 나라서적도 이미 없어진지 오래 되었답니다.
옛글을 보니 또 다른 즐거움이 옵니다.
 
추억의 장소 

그 앞에 이렇게 사람이 붐비니 
종로서적도 여전히 번창하려니 했다. 
나 하나쯤 안 사줘도 사줄 사람이 많으려니 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나 보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니. 
내가 정말로 종로서적을 사랑했다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사줬어야하지 않을까. 나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것을 잃게 만들었다. 
관심 소홀로 잃어버린 게 어찌 책방뿐일까. 
추억어린 장소나 건물,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늘 거기 있겠거니 믿은 무관심 때문에 
놓치게 되는 게 아닐까.

- 박완서의《호미》중에서 -

-----------------<옛글>----------------------
 
아주 오래 전 학창 시절 
[우리 시내서 만날까 !] 하면 
광주에서는 어김없이 나라서적(지금은 없어졌지만) 앞 우체국 정문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말이 유효한지는 잘 모릅니다.
 
일명 우다방(우체국을 만남의 장소로 여겨서 다방이라는 말과 합하여) 이라해서

공중전화박스가 이십여개 넘게 있는데
항상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속칭 우다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닌 다방의 커피 값도
아까웠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비록 그 수는 줄었지만 
공중 전화 박스는 아직도 남아있기는 하지만 긴 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다방에서 기다리기 뭐해서
전 항상 나라서적 안에서 사람을 만나곤 했었답니다.

사람을 기다리면서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훌쩍 읽기도 하고 
기다리는 설레임을 감추기도 했습니다. 
그 곳을 생각하면 아직도 내가 기다렸던 사람들과 
그 때의 내 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합니다. 
오늘도 내게 또 다른 기쁨을 전해줍니다.

<071102>

옛글) 종로서적이 없어졌다는 글을 보고서 <020615>
 
엊그제 서울의 종로서적이 문을 닫았다는 신문기사를 읽고서 
문득 그 시절 그 기억들을 떠올렸습니다.

직장이 여수라
종로서적이야 서울로 출장을 올 때만  들릴 수 있었지만
실컷(?)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한 두권 사면 그 출장은 성과 120 % 를 달성한 셈이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교보문고 회원이 되면서는
자연스레 교보문고로 발길을 향하다 보니 뜸하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온 2년 동안에도 
여전히 종로서적은 관심의 대상에서 멀리로 비켜나 있었습니다. 

여수하면 저는 대양서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수로 내려가자 마자 서점 회원으로 등록하여 할인도 받고 
새로이 서점을 증축할 때는
하숙집 건너편의 간이 임시 서점으로
그렇게 일상처럼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여천이 커지고 시내 교통이 막히기 시작하면서는.. 
더군다나 거주지를 여천시내로 옮기면서는

일이 있어 여수 시내를 들리는  경우을 제외하고는 뜸해졌습니다. 
그래도 갑장인 그 서점의 주인을 한때는 천리안 여수사랑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었지요. 
사실 여수에도 누군가를 만날 때 잘 쓰던 말 
[ 거기서 보자! ]는 [대양서림]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만남, 공통의 언어에 정해진 장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여유도 사라진것은 아닌지... .
언제가 그 말이 다시 유효할 날이 기다려집니다. 

기다림의 인내는 간절함을 벗어나 어느새 소망이 되어버립니다.
 
                          <0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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