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영화 중 하나이다.

처음 볼 때 약간은 이해가 안되어 다시 본 영화 . IPTV가 주는 덤이다.

케이트 윈슬렛을 다시 보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여배우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8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케이트 윈슬렛"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이기도 하다.  젊은시절 [타이타닉]의 히로인으로 전세계의 연인이 되었지만 그런 그녀에게 [타이타닉]도 안겨주지 못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선사한 영화가 바로 [책 읽어주는 남자(원제:The Reader)] 이다. 그녀의 백치미연기가 돋보였다.


 

 

그는 15살이었고 그녀는 30대.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어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된다. 소년은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녀는 주옥같은 명작들을 소년의 목소리로 읽게 되며, 문학의 감동도 함께 느끼게 된다. 그리고 한권 한권 책이 쌓일수록 그들의 사랑도 깊어진다.  하지만 어느날 그녀는 홀연히 사라진다. 세월이 흘러 법학도가 된 그의 눈앞에 나치전범 재판을 받는 피고인으로 그녀가 나타나게 된다. 그녀는 당당하게 당시의 입장을 설명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책임자로 낙인찍혀 유죄로 수감된다. 그녀를 변호할 결정적 사실을 알고 있던 그였지만 그는 그녀를 외면하고 마는데... 

허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있다면 이 영화는 좀 지루하다 느낄수도 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을 버린다면 이 긴 호흡의 여정 끝에 조용하고도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여운을 맛볼수 있게 해주는 영화로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오버하지않고 절제되면서도 강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는 타이타닉이나 그 이후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과는 또 달라 보인다. 나이 들어가는 원숙함일까? 내가 볼 때에는 그것만은 아닐게다. 이제는 세계의 연인이라는 심리적 부담에서 벗어나는 이유있는 여유가 아닐까?

솔직히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좀 난해하고 소설과 달리 건너뛰는 무리함도 보인다. 건너뛴다는 건 설명없이 지나가는 부분이 있다는 의미이다. 집중해도 이해되지 않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절제와 여백에서 느낄수 있는 잔잔한 감흥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영화는 한 남자의 과거에서부터 시작하여 잔잔하게 흘러간다. 

영화는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10대 소년 마이클이 길을 가다가 열로 쓰러지고 우연히 그 옆을 지나가던 30대 한나가 마이클을 집으로 데려가 안정시킨다.  마이클은 고마움을 표하기 위하여 한나의 집을 찾고 웬지 마이클은 한나에게 끌린다.

 

 

 다음날 마이클은 다시 한나의 집을 방문하고 집안 일을 도와주게 된다. 청소하느라 지저분해진 마이클에게 한나는 샤워를 권하고 샤워하는 마이클을 씻어주려고 옷을 벗은채로 다가가고 서로에게 이끌려 그렇게 관계가 깊어진다. 마이클은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끝나자마자 한나에게 달려가고 이내 서로를 탐닉한다.  

 

 

그럴 때 마다 한나는 마이클에게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고 자연스레 한나는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한나는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이야기에 울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 이견을 내기도 한다.

 

 

어느날 마이클은 한나에게 자전거 여행을 제안하고 목적지를 골라보라고 안내 책자를 보여주는데 한나는 보지도 않고 덮는다. 또 여행중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라고 메뉴책을 한나에게 권하자 한나는 메뉴판을 보면서 당황스러워하다가 마이클과 같은 걸 먹겠다고 한다.

 

난 이러한 장면,  한나가메뉴판을 들고서 당황스러워하는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15살 소년과 30대 여인의 정사장면과 나치전범 이야기가 나와서 자극적이고, 뭔가 격정적인 것이 있을것 같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함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각 남,녀주인공의 절제된 연기와 조금씩 조금씩 고조되는 감정의 이입은 어느덧 나를 영화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이제 갑작스레 사라진 한나를 만나자 묻는다. 먼저 잘 사귀고 있다가 한나(케이트 윈슬렛)가 왜 떠났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어린 주인공이 생일때문에 투덜대서 싸운 것도 있지만 제일 큰 문제는 바로 그날 그녀가 승진을 했기때문이다. 영화에서 보면 사무직으로 승진했다고 상사가 말하는 장면에서 일반적 상식으로 보면 당연히 기뻐해야 하는데 도리어 굳어지는 한나를 보게된다.  아마도 영화속 그녀는 문맹이기때문에 승진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무직은 앉아서 편하게 일할 수 있지만 서류를 검토하고 문서를 작성 보고해야하기 때문에 글을 모르는 한나는 사무직으로의 승진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맹이라는 걸 감추고 살았던 한나이기에 결국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철새마냥 떠돌던 그녀는 아무 말없이 떠나게 된다.

그녀가 직업 따라 떠돌아 다니는 철새라는 건 재판할 때도 알수 있는데 나찌집권 당시 지멘스 공장 (현존하는 유명한 독일기업)에서 일하다 사람 뽑아서 SS로 왔다고 그 이유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중에 교도소에서 출감 직전에 교도소 간수가 주인공에게 전화해서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가친척이 아무도 없어서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가 피붙이 하나 없이 굉장히 외롭게 살아왔으며 그냥 먹고 살기위해서 위에서 하라는대로 하면서 살아 온 사람이란걸 알수 있게된다.

 


그래서 재판관이 나찌 치하의 유대인 수용소 수감자중 10명씩 선별해서 죽이러 보낸 이유가 뭐냐고 자꾸 호통칠 때 그게 자기 직업이고 위에서 시키는대로 해야 하는게 당연하기때문에 그랬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물론 청중들 모두 어이없어 하고 (재판관과 청중은 그녀가 정상적인 교육을 못받은 정말 문맹에 무식(?)한 사람이라는 걸 모르기에)

한나가 나이에 맞지않게 정말 순진무구하다고 알수 있는 부분은 재판초기 부터 드러낸다.  다른 5명의 당시 동료 유대인수용소 간수들은 재판에서 살아보겠다고 하나같이 자신들은 죄가 없고, 죽이러 보내는 사람 뽑기도,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거짓 진술한다. 하지만 한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당히 자기가 했다고 말한다. 청중들 웅성웅성 ...(이 대목에서 케이트 윈슬렛의 무표정 백치미 연기 환상적...) 그러면서 다른 5명과 함께 10명씩 선발했다고 말하며, 나중에 수용소에서 살아난 꼬맹이 여자가 한나를 포함한 6명 전부가 같이했다고 지적하기는 하지만, . 그러면서 한나는 더 지독했다고 어린애들만 보냈다고.....

하지만 한나는 어린애들만 일부러 "죽음의 행진"에 보낸게 아니라 글을 못읽으니 책 읽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창피함으로 (어른 수감자에게 이를 부탁할수 없어) 손쉬운 어린애들을 뽑았기에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난 그 소녀는 당연히 한나의 사정을 모르니 한나가 어린이들을 뽑았으니 제일 악독했다고 증언할 수 밖에 없었었을 것이다.

결국 재판은 한나에게 불리하게 흘러가면서 2차 공판이 끝난다. 

 당시 상황으론 나찌가 법이었고 더군다나 한나는 문맹인걸 보니 초등교육도 못받은 사람이었기에 유대인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고 어쩌면 굳이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나 자신도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몰랐을 것이다.)

 불리한 재판에서 한나의 나찌시절 옛동료들 5명이 짜고 한나를 희생양으로 한나가 총대장이었고 한나가 시켰고 한나가 300명 불태워 죽인거 알면서도 묵인했다고 ... . 이때 한나의 표정을 보면 정말 최고의 연기로 케이트 윈슬렛에 대한 연기력 논란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잠재우는) 장면이다.


이때 그 문을 안열어줘서 300명 불태워죽인 사건의 보고서가 증거자료로 재판에 올라오는데 한나는 6명이 같이 작성한 보고서였다고 사실대로 증언하지만, 일제히 한나 혼자 작성한 보고서라고 거짓 진술을 한다. 그리고 필체 감정에 들어가는 찰나에 한나가 그럴 필요없다고 본인이 했다고 거짓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옛추억을 떠올리는데 

야외 카페에서 주문할때 메뉴판을 못읽던 그녀!

맨날 책읽어 달라던 그녀!  

좀 보라고 해도 은근슬쩍 책을 덮어버리던 그녀를 떠올리며

 

"그녀는 문맹이었구나 그걸 감추고 싶어서 필체 감정을 스스로 포기하고 죽음을 택했구나. 이제 끝났구나" 하며 눈물을 흘리며 주인공은 그제서야 자책을 한다. 

 
마지막 판결만을 남기고 젊은 주인공이 교수에게 한나는 문맹이라고 말해서 그녀를 살릴려고 작정하지만 끝내 말을 못하고 결국 판결이 떨어진다. 
다행히(?) 무기징역으로 그리고 나머지 5명은  4년 6개월형.

내 생각에는 주인공이 아직도 한나를 사랑하고 있었기때문에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문멩이라고 말하지 않은 듯 하다. 

필체 감정시에 그걸 포기한 이유가 평생 배우지 못하고 문맹으로 살아온 그녀만의 유일한 비밀이었고 문맹으로 수치를 당할 바엔 스스로 죽겠다는 마지막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죽했으면 어린 주인공과 연애시절에도 절대 문맹이라고  털어놓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재판중에 한나는 당시 상황이 포탄이 날고 불길이 치솟는 그 상황에서 문 열어 주면 (유대인) 수감자들이 도망칠껀 뻔하다. 난 이들을 수감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경비원이다 그래서 문을 못열어 줬다 재판관 당신이라면 어쩌겠는가? 라고 답변한다.

살아남기위해 어렵게 살아왔던 외로움과 세상물정을 모르는 순진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답변이기에... 이를 모르는 방청객들과 재판관은 어이없어 할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형을 선고받고 주인공은 결혼을 한다(결혼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나중에 고향의 엄마 집에 갔을때 이혼할꺼라고 털어놓는 장면에서 "이혼해도 처는 검사가 되었기때문에 혼자서 잘 살것"이라는 대목에서 같이 법 공부하던 여자와 결혼했을 걸로 유추)   

아뭏튼 주인공은 이때 부터 자기가 어릴때 연애시절처럼 책을 직접 읽고 그걸 녹음해서 음성테입으로 감옥에 보내기 시작한다. 한나는 이때까지도 어린 주인공을 못 알아보지만 그렇게 테입을 받고 굉장히 기뻐한다. 그게 그녀의 유일한 삶의 낙이 되어준다. 아뭏튼 그 전까진 죽은거나 다름없었던 그녀에겐 그 테입을 받고 부터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기 시작한다. (나중에 출소하기 직전 늙은 한나를 주인공이 식당에서 만나기 직전에 교도관이 그에게 말한다. 처음 왔을땐 너무 우울했는데 최근 몇년전 부터 주위 사람과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그녀는 용기내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직접 글을 배워 보기로 마음을 먹고 주인공에게 난생 처음으로 직접 펜을 잡아 편지를 쓰게 된다. 

편지엔 항상 주인공을 Kid(꼬맹이) 라고 부른다.  하지만 답장은 없고....

이때 주인공은 갈등에 빠진다. 

그녀의 씻을수 없는 죄와 어릴때 행복했던 추억 사이에서 ...
 
그렇게 시간은 흘러 출소 직전 드디어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16살 어릴 때 헤어진 이후에 첫만남이다. 물론 주인공은 대학생시절 재판에서 그녀를 봤지만 그녀는 보지못했으니...

중년의 주인공에게 "다 컸구나 꼬맹아" 라고 첫인사를 건내는데 노인이 된 한나.

마이클은 한나에게 묻는다.
옛날 생각하느냐고....

한나의 머리속엔 주인공밖에 없다. 

연애하던 시절의 그 행복한 추억들 (자전거 타고 주인공과 여행등등 ...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던 그시절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죠)

한나는 대답한다. 여기 오기 전에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고 무언가를 깨달아 본적도 없다고 (이게 영화의 복선으로 나중에 영화 끝무렵에 주인공이 유대인수용소에서 살아난 꼬맹이 여자(지금은 중년)를 만날 때 그 여자도 똑같은 말을 한다. "수용소에서 깨달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건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

행복했던 추억만 생각하는 그녀, 한나와  악의는 없었지만 어처구니 없는 죄를 저지른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주인공.....

이때 만난 몇십년만의 재회는 결국 비극으로 이어지는데... .

한나는 지금껏 주인공과 행복했던 시절만 생각하고 있었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만 하고싶은데 주인공은 자꾸 나찌시절 이야기만 꺼내며 자기 내면에 그녀를 미워하는 쪽만 보여준다. 사실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마음도 있는데...

우리들도 때로는 이렇게 이렇게 살고 있다.
속마음과 달리 다른 반대의 말로 서로를 감추다가 원하지 않는 상처를 입히는 일들로....

결국 한나는 문맹이였다는 게 사랑하는 이에게 밝혀지는 즉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과 사랑하는 이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는 자괴감에 빠져 출소 1주일 전에 자살을 택한다.

유대인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여자한테 자기의 전재산을 주라는 유언과 함께...
아마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몰랐지만 무고한유대인 300명을 죽이게 만든 자신에 대한 자책감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당시 꼬마 여자애를 찾아 미국까지 날아간 주인공은 이제 중년이 다된 여자와 마주한다.

그녀에게 한나는 문맹이었다고 처음으로 타인에게 그녀의 비밀을 알려준다. 그렇지만 당연히 미국에서 갑부가 된 유대인 꼬맹이여자 아니 중년의 여자는 그래서 어쩌라고? 무식했으니 용서해주라고 말하려 여기까지 왔냐? 라며 차갑게 쏘아붙인다.

주인공은 그게 아니라 "한나가 죽기 전에 전재산을 당신한테 주라고 했다." 라는 말을 전하는 순간 그녀는 흠칫 놀란다. 자신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랐기에 의외였을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 더러운 돈을 받겠냐" 면서 대신 통만 가져간다.

예전에 차담는 통이 자기도 있었는데 그게 보물이었고 그걸 잃어버렸는지 누가 훔쳐갔는지 모르겠다고 당시엔 그게 내용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고 말 하면서...

한나도 그런 통에 자기 보물을 담는 평범하면서도 순수한 소녀였다. 라는걸 감독은 말하고 싶었나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노인이 되어서도 자기 전재산을 그냥 차담는 통에 보관할 정도로 한나는 순수했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돈은 문맹퇴치기구에 기부하면서 한나이름으로 기부해도 될까요 라고 주인공이 묻죠. (문맹퇴치기구. 주인공이 한나를 기억할 수 있는 의미있는 기부입니다.)
 물론 유대인여자는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유대인여자는 주인공을 보내고 나찌에게 죽은 자신의 가족사진을 보게된다.
 


그렇게 한나 사후의 유언대로 처리하고 (비록 돈은 문맹 퇴치기구에 기부했지만)
주인공은 장성한 딸과 함께 쓸쓸한 한나의 무덤에 가서 (비석에 낙엽이 쌓여있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허름한 교회에 묻혀 있다.)  딸에게 한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영화는 끝난다.  

 

그동안 감춰왔던 한나와의 사랑얘기를 딸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은 것은 아마도 그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자책도 함께 그녀의 고통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고 ,,,, 그동안 닫혀 있던 마음을 딸에게 털어놓음으로써 가족에 대한 소통과 세상에 대한 열린 소통이 전환점 같기도 하다.  


"행복했던 추억만 생각하는 그녀, 이렇게 순수한 한나와
그녀를 악의없는 죄를 어쩔 수없이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이 사랑하는 주인공.

이런 모습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지워가는 것은 아닐까?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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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프랑스 영화를 볼 때 마다 미국 허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묘한 매력이 있다. 분위기도 그렇고, 영상미도 은근히 고풍스럽고, 특히 스토리는 그들만의 특징이 있다. 흔히 말하는 예술적 감각이럴까???  동양 3국의 영화 중 일본 색체가 느껴진달까...뭐 내 개인 생각이다.
 물론 영화 스토리에 걸맞는 배우의 영향이 매우 크기에 프랑스배우들의 은근한 매력에 젖어들기도 한다.

영화<나쁜 사랑>-원제 Trois coeurs, 3 HEARTS , 2014

얼마전 IPTV를 통해서 본  "나쁜 사랑 (3 hearts)" 은 전형적인 프랑스 냄새가 저절로 풍기는 영화인데, 특히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섬세한 표정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영화 <나쁜 사랑>의 줄거리는 막장 같지만 멜로 스릴러라는 특이한 스타일같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  샤를로뜨 갱스부르 같은 배우들은 흔히 보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미녀는 아니지만, 그녀만의 특유의 개성으로 전 세계의 프랑스 영화 팬들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샤를로뜨 갱스부르, 까뜨린느 드뇌브, 키아라 마스트로얀니. <페어웰, 마이 퀸>의 브누와 쟉꼬 감독 신작 <나쁜 사랑>의 화려한 출연진이다. 다들 쟁쟁한 배우들로 까뜨린느 드뇌브와 키아라 마스트로얀니는 실제로 모녀 사이인데, 그 배경 때문에 자연스레 그리 된 것인지, 혹은 캐릭터 설정이 애초에 그러한 것인지,  엄마와 소피의 관계가 엄마와 실비의 관계보다 더 돈독해 보인다.
 실비는 이유를 알 수 없게 가족들 사이에서 겉돌다가 동생의 남편인 마크와 다시 불 같은 사랑에 빠져든 이후 더욱 서먹해진다. 세 모녀의 관계는 평범한 모녀와 자매 사이 같으면서도 또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가령 소피는 언니인 실비를 많이 따르고 의지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언니에 대한 이 우애는 실비와 마크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정도로만 활용되고 그친다. 장래 파국이 예정된 사랑의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불안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 세 모녀 사이의 팽팽한 관계 형성이 엿보인다.

세무 공무원(조사원)인 마크(브누와 뽀엘부르드)는 리옹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열차를 놓치게 된다. 막차를 놓친 덕에 할 수없이 리옹에서 자고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잠시 들린 카페에서 만난 실비(샤를로뜨 갱스부르)와 서로에게 이끌려 거리를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이른 아침 못다한  얘기를 나누면서 사막에 가보고 싶다는 바램을 통해 복선이 주어진다. 그 다음 날 헤어지면서 약속을 합니다,.연락처와 이름도 모른체로 (실비가 그냥 보자고) 서로는  파리 튈르리 공원에서 금요일 6시에 만나기로. 한다. 뭔가 못만날것 같은 예감이 드는 대목이다.
그렇게 실비는 동생 소피에게 그의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약속의 날을 기다리고.

미국으로 이사 가자는 남편(프랑스 적 이미지로 동거남일듯)과 사이가 좋지 않은 실비는 현실의 돌파구로 마크를 선택하고, 만나기로 금요일 날 멀리 기차를 타고서 파리의 튀틀리 공원으로 6사에 맞춰 도착하여 의자에 앉아 마크를 기다린다

. 마크 역시 실비를 만나 가려는데, 중국 회서 세무조사관련하여 일이 꼬여 약속 시간은 가까워지고, 흥분한 마크는 심장 발작을 일으켜 결국은 공원에 늦게 가게 되면서 서로 어긋난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었건만, 그는 실비의 사랑이 아니었다. 마크와 실비는 상심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참고로 영화의 서두에서 마크의 심장병에 대한 심장마비를 조심하라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비는 운명 같은 사랑에  이 심장병(마비)에 대한 일종의 알림으로써 커다란 복선의 하나로 작용한다.

결국 실비는 상처를 받고 프랑스를 떠나게 된다. 얼마 안 있어 실비는 소피로부터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운명의 장난으로 마크는 실비를 찾으러 리옹을 배회하다가 세무서에서 실비의 동생 소피(키아라 마스트로얀니)를 만나 가까워지고,  결국 이 둘은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식 전에 마크는 소피의 언니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실비라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마크는 실비의 동생 소피와 결혼을 하고 평범한 일상을 꾸려가게 된다. 안정적 생활에 젖어든다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난 동생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몇년 만에 돌아온 실비는 소피의 결혼식에 도착해서 기뻐하는데...

실비와 마주치는게 두려운 마크는 취해서 침실로가고 동생은 실비에게 남편을 소개하는데 침실 전등불이 켜지면서 눈 앞에 나타난 실비의 남편은, 다름 아닌 자신이 운명이라 생각했던 남자. 그의 이름은 마크였다. 이름도 성도 모르고 그저 약속만 했던 남자가 동생의 남편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마크는 실비에게 약속장소에 심장병으로 늦었지만 자신도 그날  그곳에 갔으며, 이것은 내 선택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비는 알고싶지않다고 절규한다. 그리고 자신은 실비와의 재회를 원했다고 말하는데...

어찌 됐건 그의 변명같은 고백을 들어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이미 사랑하는 동생의 남편이 되어버린 남자인걸 ...

그래서 이 둘은 결혼식에서 재회하지만, 굳이 티내지 않고 
실비는 곧바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마크 역시 부인과 어린 아들에게 집중하며 서서히 실비를 잊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 있던 실비가 다시 리옹으로  돌아오면서 그 둘은 서로의 감정을 속이지 못하고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이렇ㅔ 그들의 삼각 관계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둘은 한밤중에 몰래 만나 몇 년 간 참아왔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서 둘은 가족들 몰래 밀월 여행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이 장면에서 나레이션과 함께 보이는 석양을 보면  아마 영화 첫대목에서 꿈꾼 사막 여행을 다녀왔을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온 실비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엄마와 함께 있는 크리스토프(현재 남자친구)를 발견하고 냅다 도망친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엄마와 크리스토프가  자신이 누구와 여행을 다녀왔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크리스토프에게 제발 소피에게 알리지 말라고 애원한다.  그 이전에 소피가 자신의 분신이라며 마크에게도 둘의 관계를 말하면 자신도 죽을거라 말해왔다.

사실 이 세 명의 관계를 눈치챈 실비와 소피의 어머니(까뜨리느 드뇌브)는 애써 모른척 하는듯 하다.

한편 마찬가지로 여행에서 돌아와 직장에 출근한 마크. 마크는 평소 심장병을 지병으로 갖고 있었는데,  때때로 너무 흥분하거나 긴장하면 심장에 무리가 와서 기절을 하곤 했다.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며 마크는 실비에게 계속 전화를 해보지만 실비는 받지 않는다. 
 
그러다 집으로 돌아온 마크는 실비에게 온 전화를 급하게 받아보는데 이미 마크는 심장 발작으로 위험한 상태. 
결국 실비와 제대로 통화 한 번 하지 못한 채 마크는 집에서 의자에 앉은 채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햔드폰을 통해서 마크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소피와 함께 ...

그리고 여섯시 튀릴리 공원의 벤취에서 실비를 만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죽어서야 그 어긋난 약속이 이뤄지는 꿈을 꾸면서 죽는걸까?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소요산 안내 ]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고 봄철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가을 단풍 또한 유별나서 예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진다. 이곳은 원효대사가 고행 수도 하여 큰 도를 깨친곳이어서 불교 유적지로도 이름이 높다. 자재암, 원효폭포등의 관광명소가 소재하고 있으며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 수도권지역의 일일관광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산세가 그다지 장쾌하고 웅대하지는 않지만 형상미의 극치를 보이듯 뾰족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어 놓아 만물상을 연상케하고, 심연의 계곡은 오묘한 정취를 발산한다. 산정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소담스러우면서도 앙증맞은 청량폭포가 있으며 폭포위로 조금만 더 오르면 높이가 10m나 되는 원효폭포가 우렁찬 낙하의 절규를 토하며 시원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자재암의 일주문 안쪽과 주차장 뒤쪽으로 항시 솟아나는 약수가 있어 물통을 한두개쯤 준비해가도 좋다.
동두천시가 직접관리를 맡아 주변이 청결하고 질서가 있어 보기에 좋다.
국내명승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소요산은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 울만큼 아름다운 명산이다.


소요산의 유래는 서화담(서경덕), 양봉래(양사언)와 매월당(김시습) 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 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하여 대자연의 많은 수림과 자연경관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이 즐겨찾고 있다.

산행기점 찾기
산행기점은 소요산역을 나와 우측으로 200m쯤가면 좌측으로 소요산 들어가는 집입로가 있다.
주차장, 관리사무소,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을 넘어가면 속리교 다리를 건너게 된다.
여기까지는 외길이고  속리교를 너머서자마자 길이 3군데로 갈리운다.
좌측 계단을 올라가면 자재암방향으로 하백운대로 가려면 이곳으로
가운데 직진은 구절터로 하여 능선에 올라 좌측은 의상대 우측은 공주봉 방향이고
바로 우측 능선으로 가면 공주봉으로 올라갈수 있다.


등산코스

관리사무소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선녀탕 → 관리사무소 : 1시간30분
관리사무소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샘 → 관리사무소 : 2시간30분
관리사무소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나한대 → 금송골 → 관리사무소 : 3시간
관리사무소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나한대 → 의상대 → 관리사무소 : 3시간30분
관리사무소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나한대 → 의상대 → 공주봉 → 관리사무소 : 4시간

교 통

전철 - 의정부역 - 경원선- 소요산역 통일호 이용(요금 1,110원)
의정부역(875-7788)에서 06:20분부터 22:20까지 매시 20분에 출발하는 경원선 열차(통일호)를 타고 소요산역(865-7788)에 내린다.
반대로 소요산역에서 의정부역까지는 매시 40분에 출발한다.(주차장 입구까지는 도보로 10분정도 소요)
버스 보다는 기차를 이용하는것이 교통 혼잡을 피하여 좋다.

전철 의정부 북부역 - 버스이용
전철을타고 의정부 북부역에서 왼쪽 출구로 나가 도로를 건너 반대편에서 39번, 136번 36번 버스를 이용한다. (40분 소요)

수유리, 쌍문동 -소요산
서울 수유동에서 136번 36번, 쌍문동에서 139번 버스가 20분마다 출발한다. 의정부역, 의정부 북부역, 동두천 버스터미널을 경유한다.
성남, 인천, 원당, 능곡에서 의정부와 동두천을 왕복하는 직행버스가 있다.

동두천 버스터미널 - 소요산(15분)
39번, 136번 36번 버스를 이용한다. 

 

열차 이용시 : 의정부 역에서 매시 20 신탄리행 통일호열차 운행 (소요산역 하차)

 

강남에서  영동대교→동부간선도로→3번 국도로 의정부→동두천→소요산→초성리→한탄강 오른쪽 구다리로 강을 건너 유원지로 진입한다.  
 
강북에서 동부간선도로→3번 국도로 의정부→동두천→소요산→초성리→한탄강 오른쪽 구다리로 강을 건너 유원지로 진입한다.  
 
대중교통편

①열차편:경원선 소요산역에서 하차한다.
②버스편:쌍문동에서 138번 버스가 소요산까지 운행하고. 미아리나 상봉동에서 소요산, 한탄강 경유 직행이 있다. 

 

 시내,외 버스 (최근에는 번호가 변경??)
1) 평안운수(36번) : 소요산 -> 수유리 - 첫차 04:30, 막차 22:40
                             수유리 -> 소요산 - 첫차 05:30, 막차 24:00
2) 영종여객(39번) : 동두천 -> 수유리 - 첫차 05:40, 막차 22:40
                             수유리 -> 동두천 - 첫차 06:20, 막차 23:30
3) 좌석버스 : 동두천 -> 수유리 - 첫차 04:05, 막차 24:50
                   수유리 -> 동두천 - 첫차 05:25, 막차 02:00
 

 

 

       [소요산 산행기 ]

 

 금번 소요산 산행은 사무실에서 업무로 지친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풀게 하고 그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기회로 활용하기로 하였지만 휴일이라 도리어 스트레스를 쌓이게 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지만 도중에 인간 네비게이터의 오류로 예정보다 40 분이나 초과하였지만 일찍 나선탓에 목적지에 가까스로 도착한다. 이번 산행의  진행 관계상 도중에 연락해오는 사람들에게는 그들 때문에 출발이 늦을 거라는 농담도 잊지않는 것은 물론이고 ...

 

예정된 인원이 다 모여 출발하는 데 한사람이 빠졌단다. 어제 사무실에서 내일 뵙겠습니다 하는 신입사원이 있엇다는데 금일 행사 대상도 아닌데다가 사전 연락도 없어서 놓칠 뻔 했는데 전화를 하니 마침 입구에 다 도착했단다.  아내가 애써 준비한 간식거리를 나눠주고 출발한다,

 

길을 나서는 초입구에  벚꽃이 만발하여 바람이 불면 꽃비를 내리니 정말 장관이다.  서울오기 전에 쌍계사  벚꽃 터널 십리 길이 생각난다. 이번 산행은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벚꽃이 동시에 피워 말 그대로 꽃동산이 되어 우리에게 봄의 기운을 만끽하게 만들어주어 산 오르는 이들에게 산행의 기쁨을 두배로 더해준다. 소요산은 아기자기한 암봉과 능선이 조화를 이룬 전형적인 원점 회귀형 산으로 대부분 원효폭포를 지난 뒤 자재암으로 들어와 시원한 폭포 청량폭포(20미터)를 지나 왼쪽 길을 오르면 하백운대로 가는 경사길이며 이를 지나면 능선으로 짜기 안으로 들어가는 길도 있으나 능선을 종주하다시피 하는 코스는 중백운대로 오르는 길이다. 중백운대까지는 가파른 암릉이어서 조망도 좋고 올라가는 맛도 상쾌하다.

하백운데-중백운대-상백운대능선은 대체로 평탄한 산길로 이어지나 그렇다고 조망마저 평범한 것은 아니다. 내려다보이는 소요산 골짜기는 단애를 이루고 있다. 중백운대와 상백운대 중간쯤에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 길로 내려가면 선녀탕, 선녀폭포를 보고 자재암으로 내려갈 수 있는데 우리가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내려다 보는 선녀탕 일대에는 주능선에서 뻗어내려온 암릉이 톱니처럼 날카롭고 단애를 이룬 곳곳에 소나무가 서 있어서 절경을 이룬다. 상백운대에서 나한대를 지나 의상대(정상)까지 가서 계곡으로 내려서서 하산하면 원점회귀 산행은 끝이 난다. 하산길은 급경사이나 그렇게 위험한 코스는 아니고 돌길이므로 겨울에는 미끄러질 염려가 있을거라고 생각을 해본다.

 

소요산은 펼쳐진 산이 아니라 접혀진 산으로 청량폭포를 지나 자재암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소요산의 전체 모습 중 상당부분을 즐길 수 있는데  높이에 따라 보이는 절경이 제각각 다르다. 소요산은 높지않아 최고봉 의상대가 587미터(지금까지는 547미터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펴낸 지도에 587미터로 정정되어 나왔다고 한다)에 지나지 않지만 자재암 뒤쪽 봉우리인 하백운대에서 시작, 공주봉까지 연결하여 산행하려면 4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만 금번 산행에서는 시간 관계상 의상대에서 나한대로 되돌아 오는 도중에 하산길을 택한다. 
동두천쪽에서 소요산 골짜기로 들어가면 소요산의 명성을 실감할 수 있는 경관을 보여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주위의 산세가 그렇게 비범해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길가의 맑은 계류에서 물소리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올 뿐이다. 그러던 것이 자재암 일주문이 나오고 첫번째 멋진 폭포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폭포 옆 안으로 패인 굴과 그 위의 바위, 폭포왼쪽의 높은 단애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평범하던 경관은 순식간에 뒤바뀌고 소요산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봄비가 드물어 폭포는 작게 느껴졌지만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폭포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만일 봄비라도 온 다음날이었다면 더욱 아름다웠으리라. 자재암으로 돌아 올라가는 바윗길에 들어서기전 오른편 계곡이 열리는데 공주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그곳으로 나 있다. 위에 말한 코스를 역으로 돌아오려면 공주봉으로 먼저 올라가도 된다.


자재암으로 올라가는 길옆의 바위아래 폭포가 떨어지고 있다. 단애 주위에 철책이 둘러져 있어서 안심하고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개울을 건너가기전 주위를 둘러보면 맞은편 백운선원뒤로 높은 단애가 다가서 있고 그 위엔 소나무가 무성하다. 오른쪽으로 열린 계곡 안쪽으로는 중백운대-상백운대-나한봉 능선이 선명한 스카이라인을 긋고 있다. 산입구에서 이만한 절경들을 한꺼번에 바라보기도 힘든다. 햇빛은 화사하고 단애와 능선들은 멀리 떨어져 있지않다. 그래서 소요산쯤이야 하는 가벼운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개울옆 석축위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자재암이 나온다. 자재암 일대가 바라다 보이는 입구부근의 작은 전망대바위에서 바라보면 계곡 안이 비좁은데도 자재암은 지형을 따라 좁은 곳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터를 잡고 있으며 그 뒤에는 단애와 노송숲이 어울어져 산록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백운대의 서릉에 해당되는 능선까지가 자재암의 뒷능선에 해당되는데 자재암뒤의 삼성각에서 능선까지는 급경사여서 반 단애를 형성하여 마치 수목과 단애, 절벽과 송림이 적절히 어울어진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놓은 캔버스같다.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알려져 왔다. 고려중엽 이규보는 "원효가 이곳에 오면서 물이 솟아 올랐다"고 자재암이 원효가 정진하던 곳임을 시로써 밝혀 전해주고 있으며 조선 현종조때 미수 허목(학자, 우의정)은 원효대사가 이절을 최초로 지었다는 사실을 그의 "소요산기"에 적고 있다고 한다. 자재암은 그 뒤 고려 광종때와 의종때에 중창되었으나 이곳을 지나간 숱한 병화에 당우가 재로 변하는 일이 잦아 현재의 절 모습은 1960년대 이후에 들어와서야 자리잡게 된 것이다.


소요산에는 원효대사의 '전설'을 말해주는 것들이 여러 군데 보인다. 나한전옆 원효대아래 굴 입구에 솟아오르는 샘물은 이규보의 시에서처럼 7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시원한 물맛을 과객에게 선사하고 있고 의상대 서쪽 봉우리이자 하백운대로 종주산행을 할 경우 맨 나중 봉우리인 공주봉은 요석공주에서 따온 것인 듯 싶다. 요석공주가 기거하던 궁터도 산 입구에 있었다는 구전이 전해져 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에 비해 함흥으로 오는 사자들을 차례로 죽이며 아들(태종)이 저지른 골육상쟁의 정변을 골수에 사묻친 원한으로 경고하던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주변의 귀환요청을 마침내 뿌리칠 수 없어 개경으로 돌아오다가 소요산에 이르자 그만 계곡으로 들어가 버리고 그로 하여 태종이 왕궁을 소요산 계곡 안에 지었다는 얘기는 역사적 사실이다. 태종원년 이곳에 태조가 기거할 왕궁을 세우고 태조가 거기에서 6개월 남짓 시간을 보내던 족적이 남아있는데 태조는 이곳에 잠깐 있다가 한양이 조금 가까운 양주 회암사로 내려간다. 자재암의 특이한 전각은 나한전이다. 자재암 앞으로 암릉이 단애를 이루어 솟아 앞을 가로 막고 있는데 동서로 트인 형상의 작은 골짜기가 자재암 앞으로 가로 지르고 있다. 즉, 서쪽으로 트인 계곡입구에서 원효대라고 불리는 뾰족한 바위 봉우리와 그 단애 사이에 형성된 아름다운 폭포인 원효폭포 뒤로 협곡이 뚫려 남북은 협곡이 가로막고 동곡서야로 동서가 관통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나한전은 원효대 바위 아래 굴속에 있다. 굴옆에 석간수가 솟아올라 사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목을 축여 주는 샘터 안쪽으로 깊숙이 동굴이 형성되고 거기에 나한전이 이루어졌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동쪽 요사채와 나한전 사이에 있는 바윗길이다. 이 길은 노송이 우거져 있어 운치가 그윽한 길이나 워낙 급경사여서 철책을 길게 세워놓았다. 쇠난간을 움켜 잡으며 처음 올라선 전망대에서 골짜기를 내려다보거나 맞은 편 산록을 바라보면 암릉이며 암릉의 한쪽이 완전히 함몰하여 멀리서 보아도 오금이 저려올 것만 같은 칼바위 부근 단애가 시야에 들어온다. 선녀탕이 단애아래 있을 듯한데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중백운대에서 상백운대까지의 능선, 상백운대에서 나한봉까지의 능선도 밋밋한 육산의 모습이다. 전망대에서 중백운대로 올려다 보면 거기에도 엄청난 단애가 정수리에 송림을 이고 솟아 있다. 제1전망대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급한 암릉이다.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니지만 만일을 위해 대부분은 우회로로 산등성이를 올라간다. 단애 위는 작은 암봉 처럼 되어 있어 또 하나의 좋은 전망대를 만들어놓고 있다.. 이 전망대를 지나면 하백운대에 얼마 안가 도착하게 되고 안부를 지나 급경사를 조금 올라가면 밑에서 보았던 단애위로 송림이 우거진 멋진 암릉 길이 전개된다. 단애를 좋아하여 자꾸만 그쪽으로만 뻗는 길다란 소나무 가지 아래로 보이는 계곡풍치며 멀리 올곧게 솟은 나한봉의 우람한 풍경은 이곳 경관의 백미다.
자재암-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나한봉-의상대-금릉-자재암 까지의 산행 시간은 세시간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직장에 찌들린 탓에 세시간 반으로 예정했는데 대충 맞춘 셈이다. 상백운대까지는 능선에 별다른 이경은 없고 나무는 소나무보다는 활엽수가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상백운대 정상엔 송림이 우거지고 있다. 상백운대에서 나한봉까지 길이도 길고 칼날같은 암릉에 수피가 유난히 거북등같은 패턴을 이룬 노송이 짙어 거칠고 이색적인 풍치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잠깐만이라고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한 곳인데 대부분 시간을 놓치기 마련이다.

. 좁다란 판석을 세로로 세워놓은 듯한 바위 사이로 발을 옮기기도 어려운 곳이 많은 이 능선의 매력은 여름이면 10분 발휘될 듯하다. 바람이라도 불면 송풍음 소리가 시원할 아름다운 능선이었다. 상백운대와 나한봉사이의 안부는 고도 100여미터가 푹 꺼진 곳이라 내려갈 때나 올라갈 때 모두 쇠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소요산은 이런 급경사가 많은 것이 하나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칼바위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이 삼거리에서 나한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대단한 경사길이라 곧 숨이 턱에 닿는다.
나한봉에서 서쪽으로 본 의상대는 테라스형 암릉 그것이었다. 나한봉에서 의상대로 가는 길목엔 그림같은 야트막한 그러나 수석처럼 아름다운 암릉이 있다. 요철이 극심하여 길은 암릉 아래로 철제보도를 만들어 사람들은 그 위로 다닌다. 소요산의 바위는 전반적으로 춘천 삼악산의 암질과 유사하다. 절리가 미세하여 예각을 이룬 바위들이 많다. 절리된 바위의 석면은 대패로 민듯 부드러워 비스듬히 바닥에 박혀 있는 바위를 비올 때 밟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일 듯하다. 절리된 돌덩어리중엔 직육면체를 이룬 돌들이 많아 보인다. 비스듬히 기운 바윗덩이에서 초대형 끌로 깨뜨린 바위들이 날까로운 모서리를 허공에 내지르며 줄지어 암릉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은 규모는 작지만 장관이다. 소요산은 처음이기에 꼭 가보고 싶은 의상대길을 택했다.  의상대는 소요산의 주봉이다. 그 호방한 암릉미와 단애로 소요산의 중소봉우리

들을 호령하는 품새가 꽤나 당당해보인다. 암릉은 자재암을 향해 좁고 길게 뻗어 있는데 단애 양쪽은 깎아지른 단애다. 대패로 민듯한 매끄러운 석면의 바위들이 3-40도 각도로 바닥에 끼워져 있어서 신경이 쓰이는 이 암릉 위에 서서 공주봉과 그 사이의 골짜기를 바라보면 호연지기가 몸속을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소요산에 와서 의상대에 오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요산의 백미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될 것 같다.

시간 관계상 들려보고 싶은 공주봉을 뒤로 하고 나한대로 오는 길에 선녀탕을 향하는 샛길을 택한다. 내려오는 길은 자갈에 가까운 길로 야생화도 찍고 여유를 부리면서 내려오니 예정된 시간이 된다.소요산 입구에 있는 음식점 중 한곳을 골라 동동주에 매운탕을 ㅗ산해으이 피로를 풀고서 집으로 길을 재촉하니 벌써 세시반 … 밀린 도로사정으로 집에 도착하니 오후 여섯시 반 대장정이 끝났다.

 

그러나 난 불행히도 원효대사도 요석공주도 그리고 태조 이성계의 흔적도 만지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다. 

 

 (20050425)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작년 2학기 부터 토요일은 자율 수업이다.

현재도 초중고를 통털어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매주 토요일 자율학습을 하는 주5일제 시범학교이다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있지만

최근 두달은 아이들과  전혀 함께 할 수 없었다.

토요일에는 둘째아이가 학교 특활로 사교댄스를 배우는 과정으로 일정은 아이들과 맞추어야 하여 일요일로 일저을 미루다가 태안군 신두리의 우리나라에 유일한 사구인 신두리 사구를 답사하기로 마음먹고 아침 아홉시반에 집을 나섰다.

  

신두리가는 길에 낯익은 길을 만나 고객 방문시 들린 곳인가 했더니

작년에 아이들고 함께 서산 마애삼존불을 답사할 때 들렸던 곳으로 아이들의 기억ㅇ ㅣ더 생생하다. 잠시 아빠의 체면이 구겨지는 순간이다. 

 

태안 마애삼존불은 국보 307호로 백제의 미소와 예술을 느끼는 곳이다.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가 아직도 아이들 마음에 살아있는 영향인지 관심이 덜한듯한 기분에 몇가지 질문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떠 보고 기억을 새롭게 해준다.

 

그곳을 떠나 신두리 해수욕장 .

아직 신두리 해수욕장 가는 길은 비포장으로 포장 공사가 한창이엇다.

새로운 펜선으로 ..........

 

차들이 다닐정도로 가는 모래 백사장에서 한폭의 그림처럼 감상하면서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고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긴얘기를 나눈다.

 

다른 곳과 다른 점은 발자국 소리에도 작은 게들이 도망을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갯벌에서는 아이들 발자국 소리에도 게들이 게구멍으로 금방 숨어 버려

아이들이 긴 시간을 허비해도 잡기 힘들 게인데 

이곳에서는 발자국 소리에 도리어 가만히 있는 게들이라.........

아이들은 말한다. 아직 이 게들이 아직 자연과 함께여서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른다고

생생한 체험처럼 아이들은 그 게들을 잡더니 결국은 ..........

 

신두리 사구는 아래 인용글로 대체합니다.

 

아이들의 소감을 물으면서 오는 길에 박속 낙지 보다는

태안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먹은 게장 한정식을 고향 맛처럼 저말 맛잇게 먹었다.

전라도 광주 출신인 내가 계산하면서 혹시 따로 팔 수 없느냐고 물었다면 아마 그 맛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아닐련지...

 

참. 에피소드 하나 .

십년넘게 타던 차를 이번에 바꾸면서 아버지의 도움으로 LPG로 바구었는데

익숙치 않아 LPG 충전소를 찾던중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와서 마음고생을 했다.

보험사인 LG화재에 전화해서 근처에 있는 주유소를  소개받기도 하여

마지막 불행은 피할 수 있었다. 

"어디 멀리로 길나서면 기회 있을 때 마다 충전해"라는 선배(?)의 말을 가슴에 담는 하루였다.

 

(20050328)

 

 

    [ 신두리 사구 ]

 

길이 3.4㎞ 너비 0.5~1.3㎞ 규모… 금개구리·갯메꽃이 사는 생명의 땅


▲ 태곳적부터 바람에 실려온 모래 켜켜이 쌓여 마침내 사막처럼 거대한 모래언덕을 만들어 놓았으니, 충남 태안에 있는 신두리 사구다. 지도에 표기된 유일한 모래사장이다.

봄 바다엔 설렘이 넘실대고, 여름 바다는 뜨겁다. 철 지난 가을 바다에선 파도 소리조차 쓸쓸하게 들리는데, 엄동설한의 겨울 바다는 이런 감정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냉혹하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눈물조차 얼려버릴 듯 맵찬 북서풍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겨울의 바다를 보고 싶어한다. 이들이 겨울 바다에서 건져 올리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따뜻함과 희망이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리아스식 해안으로 이루어진 태안반도. 그 서쪽에 자리한 신두리 해안은 삭풍이 참 매서운 곳이다. 무엇보다 겨울 바다 풍경을 더 황량하게 연출하는 광활한 모래 언덕이 있다. ‘사막’이다!

“와, 정말로 사막 같아! 우리나라에도 이런 데가 있다니!”

신두리 바다를 찾은 사람들은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너른 해안 사구(砂丘)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억새 누워 있는 사구는 제주의 오름인가 하면 어느새 텅 빈 대관령 목장이 된다. 그러다 나목 몇 그루 신기루처럼 솟아 있는 모래밭에선 어린 왕자의 목소리가 들릴 듯한 사막 풍광을 만난다.

길이 3.4㎞, 너비 0.5∼1.3㎞에 달하는 이 모래 언덕은 파도와 바람의 합작품이다. 파도가 서해의 고운 모래를 해안에 실어 놓으면, 순간 풍속 초속 17m의 북서풍이 모래를 육지로 옮긴다. 전문가들은 무려 1만5000년이란 세월 동안 겨울마다 쌓인 나이테가 지금의 사구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원형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사구의 형성과 고대 환경을 밝히는 데 학술적 가치가 크다.

모래밭이라 척박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멸종 위기종인 금개구리를 비롯해 표범장지뱀, 무자치와 갯방풍, 갯메꽃 등 보존 가치가 높은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명의 땅이다. 정부에서도 이 사구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2001년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했고, 이듬해 해양수산부가 사구 주변 바다를 ‘해양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정했다. 환경부는 사구 안의 두웅습지 일대를 ‘습지보전지역’으로 보호하고 있다.

키 작은 해당화가 가시만 잔뜩 세우고 바람에 맞서는 겨울 사구에서 생명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사구의 모래가 왕성한 생명력으로 요동치는 건 요즘 같은 겨울이다. 바람이 심한 날이면 밤새 모래 언덕 하나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자연의 조화다.

서해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파란 바다로 내려선다. 밀물 때면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를 머리맡에서 들을 수 있고, 썰물 때면 곱디고운 모래가 깔린 널따란 백사장을 맘껏 달릴 수 있다.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스러지는 저녁 노을을 어찌 빼놓을까.

밀려드는 파도를 구경하는데 갑자기 짙은 해무가 밀려온다. 바다와 모래 언덕과 사람들 모두 자욱한 안개에 휩싸인다. 안개 속 어디선가 감탄사가 들려온다.

“와, 환상적이야! 마치 전설 속의 바다에 온 것 같아!”


◆여행수첩

●가 는 길
△자가운전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32번 국도→서산→태안→603번 지방도→원북면 삼거리(좌회전)→634번 지방도→1.5㎞→삼거리(좌회전)→6㎞→신두리.
△대중교통 서울남부터미널(02-521-8550)과 대전동부터미널(042-624-4451)에서 태안행 고속버스가 20∼30분 간격 운행. 태안공용터미널(041-675-6674)에서 신두리행은 하루 4회(6:15 8:50 13:20 17:50) 운행.

●숙 박 최근 민박, 펜션 등 숙박시설이 많이 생겼다. 자작나무(041-675-9995), 마로니에(041-675-1671), 하늘과 바다사이(041-675-1988) 등이 깨끗하다.

●별 미 신두리 가는 길에 태안 원북면의 별미 박속낙지탕을 맛보자. 박속을 넣고 끓인 물에 세발 낙지를 살짝 익혀 먹는 음식. 낙지 우러난 국물에 칼국수나 수제비를 넣어 익히면 박속과 어우러져 제법 담백하다. 어린 낙지가 많이 잡히는 초여름이 제철인데, 겨울엔 조금 큰 낙지로 요리한다. 반계리의 원이식관(041-672-5052) 원풍식당(041-672-5057) 등이 잘한다. 1인분에 1만2000원.

●주변 볼거리 신두리 사구 남쪽 포구는 대규모 굴양식장이다. 주민들은 겨울마다 바닷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굴을 깐다. 원북면 반계리엔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옥파 이종일 선생 생가가 있다.


태안=글 사진·민병준 여행작가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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